차례
프롤로그
1주차 경제공부의 시작
왜 평범한 사람들이 금리, 환율, 유가를 공부해야 할까?
경제학 교과서에 나올 사건, 팬데믹 시대의 무역과 금융
돈을 정부가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를까?
알아두면 삶에 유용한 가장 기본적인 경제용어와 법칙
2주차 금리 공부
금리를 왜 알아야 할까?
금리는 돈에 '돈값' 을 매기는 것
내 예적금 이자가 왜 이렇게 저렴한 거죠?
기준이 되는 금리. 그거 대체 누가, 왜 정하는건데?
무역과 금리, 거래와 돈값의 상관관계
3주차 환율 공부
환율을 왜 알아야 할까?
환율은 무역할 때 필요한 외국 돈의 '소비자 권장가격'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힘센 나라' 의 돈, 기축통화
돈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다고?
아시아 외환위기의 시작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었다.
우리나라가 겪은 IMF 외환위기의 전모
전쟁으로 돈을 번 미국, '기축통화국' 이 되다
미국과 중국의 기축통화를 둘러싼 왕좌의 게임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우리나라
4주차 유가 공부
유가를 왜 알아야 할까?
유가, 세상 모든 물가를 움직이다.
유가의 지정학 : 국제 역학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
유가. 세계경제의 판을 흔들다
개인이 원유를 거래하는 신박한 방법
결론
에필로그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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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지금, 경제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저축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다. 사업에 크게 성공하거나 복권에 당첨이 되거나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건물이 아닌 이상 목돈 들어가는 내 집 마련, 결혼, 자녀 양육, 노후 준비를 하기 위해 대출과 재체크는 필수를 넘어 생존 기술이 된 세상이다. 그만큼 금융실무와 친해져야 한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모두가 비슷한 상황이면 또 그런 대로 살 길이 열린다. 하지만 이것저것 알기는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 점에서 셀프 주문 키오스크 화면에 적힌 영단어 'ORDER' 를 큰 노력 없이 읽기 위해 12년간 영어를 배워왔던 것 처럼 말이다. 공교육에서 우리만큼 영어를 배우지 못한 윗 세대 어르신들은 요새 간판이나 안내 문구들이 죄다 영어로 되어 있어 읽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아마 우리가 그 시절로 돌아가면 한문으로 쓰인 문서를 못 읽어서 주민등록증본도 떼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기사나 금융상품 가입설명서를 읽을 때 힘들었던 적이 있는가? 금융실무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경제정보를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금융실무는 경제적인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부터 경제와 천천히, 꾸준히 친해지면 된다. 이 책을 재밌게 읽다보면 웬만한 경제현상은 대강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강 이해한다는 말이 너무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강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경제를 꼼꼼하고 완벽하게 알려면 실제 상황을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보험이 나에게 더 맞는지, 지금 예산으로 어느 가격대의 월세를 구해야 적절한 것인지, 주택탐보대출을 받을 땐 상환 방식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퇴직연금을 안전하게 운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욕심을 부려서 상품을 선택해야 할지, 주식투자 이야기에 어떻게 맞장구칠지, 창업을 했는데 정부지원금 수급 조건은 뭐라는 건지, 이 주식을 지금 팔아야 할지, 우리 업계 전망은 어떤지, 이직하려는 회사와 부서의 장기적인 전망은 어떤지, 이번 기획안은 어떤 시장을 어떻게 노려서 작성할 것인지 등 등.
그러나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상황에 대한 메뉴얼을 다 만들 순 없다. 그러니 우리의 목표는 뭔가 이벤트가 생겼을 때, 관련 뉴스나 전문가의 조언을 찾아보면서 "아, 이거 나 들어봤는데?" 하고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돈이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어떻게 흘러 다니는지 이해하는 정도' 말이다. 딱 그만큼의 경제공부, 이제 시작한다.
1주차 경제공부의 시작
왜 평범한 사람들이 금리, 환율, 유가를 공부해야 할까?
경제현상에 대해 안다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내가 깎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려운 금리와 환율, 거기다가 생소한 유가까지 알아야 할까?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자가 낮다고 하면 이자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휘발유 값이 올랐다고 하면 오른 가격으로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굴러가는 것을 이해하려면 돈 굴러가는 것은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세상을 왜 이해하고 싶을까? 알아야 뭐라도 할 것이다. 그러니 알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왜 그럴까? 여기서 떠오르는 이야기는 '기차 화장실' 이야기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걷거나 말을 타는 대신 기차와 배를 타고 나닐 수 있게 됐다. 물론 철도 사업자는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각국 조선 산업도 크게 성장했을 테고 기차와 배에 철강을 대는 광공업과 철강 산업도 활발히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업은 투자해야 하는 돈은 크고, 경영하는데 들어가는 자원도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개인들은 전혀 돈을 벌지 못했을까? 빠른 이동이 가져다주는 편리함만 누리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과 크게 상관 없이 살았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롭게 생긴 기차와 배에 들어가는 화장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무렵 사람들은 이동 수단에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다가 뱃속에서 신호가 오면 그냥 언제든 내려서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달리는 기차에서 마음대로 내려서 용변을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기차에서 잽싸게 내려서 역 화장실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분명히 기차나 배에 들어갈 화장실을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그 화장실을 끊임없이 개량한 사람도 인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덕에 통장이 빵빵해졌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나 그들의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세계가 클 만큼 크고 발전할 만큼 발전해서 '깨끗한 화장실' 도입만큼 대박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잘 따라가다 보면 직장인으로서도 조그맣게 내 가계부를 챙기고, 회사 프로젝트의 '중박' 을 치는 일은 가능할 것 같다. 필자는 보통 이런 희망을 '수세식 변기 발명 게임'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21세기 직장인의 수세식 변기 발명 게임을 만드는 기본이 바로 금리와 환율과 유가다.
금리와 환율과 유가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 바로 세상을 지금 같은 모습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무역과 금융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기차도 석탄과 석유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등장한 이동 수단이다.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물질들은 석유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의 원재료인 석유의 가격, 즉 유가는 세계경제 전체를 움직인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석유가 나지 않는 국가는 100%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때 한국 돈 5만 원짜리를 받아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 거래는 미국 달러로 진행한다. 그럼 한국 돈과 미국 돈 달러를 몇 대 몇으로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그게 바로 환율이다. 그럼 또 환율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그건 바로 금리가 결정한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 모르겠는가? 걱정마시라. 앞으로 천천히 설명할 금리, 환율, 유가 이야기를 잘 따라오면 된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이 내용을 구석구석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내용을 공부하기 전에 이번 챕터에서는 기본적인 경제학 상식을 알아보고 재밌는 사례들을 통해 실생활에서 금리와 환율과 유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자연스레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올 사건, 팬더믹 시대의 무역과 금융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영즘으로 우리 모두 힘든 한 해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경제상식을 공부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시기였다. 겨우 버티고 있던 경제의 취약한 부분이 드러나고 많은 뉴스를 통해 돈의 흐름을 명확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9일, 세계 증시가 폭락했다. 어떤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고,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대형주도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최고가가 6,2000원이 넘었던 삼성전자가 42,000원 정도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주식에 투자했던 개인과 기업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같은 기관들은 그 시점에 큰 손해를 보았다. 주식 가격이 다시 오를 때까지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주식 일부를 그때그때 팔아서 생활비나 의무적인 지급금으로 써야하는 사람들은 아주 무서운 상황인 것이다. 산 가격보다 싸게 팔아야 하고 그 순간 손해가 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사람들도 있었다. 폭락한 시점이 좋은 주식을 저렴하게 살 기회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 때 주식을 샀다. 단기적으로 이 결정은 꽤 괜찮은 수익을 가져다줬다.
또 코로나 사태로 인해 네이버, 카카오, 줌, 쿠팡 같은 각종 플랫폼 기업, 씨젠이나 에스티팜 같은 바이오 기업 등 비대면 산업과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산업은 오히려 시장 규모를 키웠다. 회사마다 수익률에 차이는 있었지만 꼭 투자로 돈을 벌지 않았더라도 주가가 떨어질 때 놀라서 팔아버리지 않은 사람들은 그 때 판 사람들만큼 잃지는 않았다. 주식을 계속 갖고 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해서 이 폭락은 반드시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요새는 금융과 경제를 공부해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가 심해질 기미가 보이자 이와 관련된 기업들에 투자해 돈을 번 사람들도 많았고, 또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는 형태의 퇴직연금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미리 돈을 빼거나 운용상품의 비율을 변경해 괜찮은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2020년에 남들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실생활에서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 한 번 작년 돈의 흐름을 통해 경제학적 배경지식을 채워볼까? 2020년 한 해 주요 경제뉴스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렇다.
코로나19의 가장 무서운 점은 높은 전염병이다. 조금만 가까이 접촉해도 병에 걸리니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초기에는 치료제나 백신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 어려워진다. 얼굴을 맞댔다가 감염에 감염이 이어지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던 흑사병 사건이 재현될 판국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외출조차 어려워지다 보니 실물경제가 멈춰버렸다.
실물경제는 뭐고 금융경제는 뭐지?
요새 결제는 신용카드나 모바일로 해서 실물화폐 (현금) 을 볼 일이 적다. 내 통장에 얼마 있는지는 보통 모바일 뱅킹에 나타나는 숫자로 확인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도 그 과정에서 올라온 사진을 보고, 인터넷으로 결제를 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화폐나 물건을 볼 일은 드물다.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분명히 공장에서는 진짜 물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진짜 물건이 쌓인 진짜 창고도 있고, 그 창고에서 중간 지점까지 물건을 날라주는 진짜 트럭도 있고, 그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과 물건 파는 사람에게 물건을 받아 접수한 사람 그리고 물건을 배달해주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서로 '만나야만' 일할 수 있다.
실제 물건이 만들어져서 운반되고 진열되고 팔리는 경제, 이것을 바로 실물경제 혹은 실물경기라고 한다. 광산에서 광부들이 모여 싱크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알루미늄을 캐는 것도 실물경제고, 필리핀에서 재배한 바나나가 한국까지 올 수 있도록 커다란 화물선에 식는 것도 실물경제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마시는 것도 실물경제다. 심지어 여기 등장한 모든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판매 수익을 올리는 것도 실물경제다. 생산과 제조, 내수와 소비, 수출입과 같은 무역까지 코로나19는 바로 이 실물경제를 한 방에 멈춰 세운 것이다.
노동자 = 소비자 : 코로나에 걸릴까봐 과일 따러 못 가갰어!! 일당이 안 나와!!
농부 : 과일 수확을 못 하고 있어! 과일 값을 못 받고 있어!
운전자 : 과일 가지러 못 가겠어! 운전비를 못 받고 있어!
창고 : 과일들이 안 들어와! 보관료를 못 받고 있어!
가게 : 창고에 과일이 없대! 장사를 못하고 있어!
소비자 = 노동자 : 과일 사러 못 가겠어! 사실 돈도 없어!
택배 기사 : 다들 못한다는데 왜 나만 일해야 해?
사장님 : 사람들이 뭘 사러 안 와서 물건이 안 팔려!
소비자 = 노동자 : 다니는 회사가 물건을 못 팔아서 월급이 안 나와!!
--------------------------- 여기까지가 실물 경제 -------------------------------
주식 : 회사가 멈춰버려서 이익도 안 나오고, 주가가 떨어진다!
투자자 : 응? 나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거야? 이번에 투자한 데서 손해 보는거 아니야? 돈을 도로 찾을까?
여기에서 실물 경제가 아닌 부분이 끼어들었다. 이름이 뭔지 아는가? 바로 '금융 경제' 다. 금융경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일상 속에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목적이다.
교환활동이 바로 금융
태초는 아니고 어느 시점부터 '돈' 이란 것이 생겼다. 원시시대 어느 부족은 조개껍데기를 갖고 돈이라고 했고, 어느 부족은 예쁜 조약돌을 모아 돈이라고 했다. 무엇을 돈이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돈이라는 '개념' 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돈이 생기기 전 경제활동은 물물교환 형태였다. 사람이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서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있는데 너한테는 없거나, 나한테도 있지만 너한테 있는게 더 좋거나 한 것들을 서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뀌자 혼자 살 때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나아졌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겨 더 많은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싶어진다. 3명이서 물건을 주고 받는 것보다 30명이 서로서로 주고받는 게 새로운 물건이 훨씬 많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서로 교환하고 싶은 물건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가진 모든 물건 중 단 1개도 필요하지 않는 사람도 생긴다. 나는 저 사람이 가진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는데 말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돈' 을 발명한다.
물건을 바꾸는 대신 돈으로 살 테니 돈을 갖고 있다가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이 탐나면 너도 돈을 내고 사라는 것이다. 돈에다가 일정 수준의 가치를 저장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이자 계산의 단위가 됐다. 그리고 물건 대신 돈이 왔다갔다하게 된 걸 바로 금융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생긴다. 우리 집 오렌지 1개를 조개 껍데기 3개로 살 수 있으면 바다 건너서 메리네 오렌지도 조개껍데기 3개로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공평하다고 느낄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일단 받고 싶은 만큼 가격을 불렀다. 그래서 이 오렌지는 조개껍데기 100개, 저 오렌지는 조개껍데기 3개가 됐다. 물론 오렌지를 당장 먹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고서야 조개껍데기 100개짜리 오렌지를 살 리가 없다. 바로 옆 가게에서 조개껍데기 3개에 팔고 있는 오렌지가 있었다.
이러다 보니 장터에서 '대충 요 정도의 가격을 매기면 오렌지가 가장 많이 팔리더라' 하는 전통이 생긴다. 옆 상인이 나와 비슷하게 맞추고, 그 옆 상인도 비슷하게 맞추고 하는 식으로 한 장터의 오렌지 가격은 대강 비슷해졌다.
그러나 바다 건너 사정은 다르다.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조개껍데기 개수도 다르고, 오렌지 농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도 다르다. 그렇게 지역에 따라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이 달라진다. 이 가격의 차이를 이용하는 시장이 바로 무역이다.
'오렌지 구입단' 이라고 쓰고 '무역회사 라고 읽는다.
오렌지가 잘 나지 않는 나라 사람들은 오렌지를 싸게 사 먹고 싶다. 그래서 '오렌지 구입단' 을 꾸려 오렌지가 싼 옆 나라에 가서 오렌지를 왕창 사오려고 한다. 오렌지 구입단이 오렌지를 많이 사오려면 큰 수레가 필요하다. 큰 수레는 만드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오렌지 구입단은 발 넓은 옆집 사람에게 부탁한다.
" 저기요. 우리가 오렌지 사오면 좀 떼어 드릴게. 돈 빌려줄 사람 없나 좀 알아봐줘요. 그 사람들한테도 넉넉하게 챙겨드릴게. 오렌지 팔아서 이득 보면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이 드리겠다고. "
그렇게 발 넓은 옆집 사람은 주변에 돈 있는 사람들은 알아본다. '금융 중개' 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정보를 알게 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오렌지 구입단에게 수레 값을 투자한 '투자자'가 된다. 오렌지 구입단이 옆 나라로 건너가 오렌지를 사와서 다시 파는 건 실물경제지만, 발 넓은 옆집 사람과 돈이 남아서 오렌지 구입단에게 수레를 사준 사람들이 한 일은 금융경제다.
오렌지 구입단은 오렌지를 많이 사와서 조개껍데기 6개에 팔았는데 아주 인기를 끌었다. 수입 오렌지가 등장하기 전 오렌지 1개에 조개껍데기가 10개 였는데 바다 건너에서 사 먹으면 조개껍데기 3개이긴 하지만 그 돈을 아끼려고 바다를 건너느니 오렌지 구입단이 파는 걸 사 먹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렌지 구입단이 한 번 바다를 건널 때마다 더 많은 오렌지를 사오길 바라게 된다. 수레를 더 많이 사주려고 너도나도 돈을 모아서 주는거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이제는 다 기억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렌지 구입단은 누가 얼마만큼의 돈을 줬는지 기록한 증표를 나눠준다.
오렌지 구입단 : 자, 조개껍데기 300개 줬다고 적었습니다. 다음에 우리 수레가 도착하면 이거 내시오, 그럼 원금에 5% 이자 얹어서 돌려드려요
수레 투자자 : 혹시 돈을 안 돌려받고 계속 갖고 있으면서 다른 혜택을 볼 수도 있나요?
오렌지 구입단 : 수레 1대를 다 살 만큼 내시면 그 수레에 실린 모든 오렌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권을 드리죠.
수레 투자자 : 좋아요. 그럼 이 문서는 내가 수레 1대 값을 투자했다는 증표인거에요.
이 증표가 주식 혹은 채권이다. 오렌지 구입단을 무역회사라고 본다면 이게 바로 주식이나 채권이고, 이게 바로 금융경제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다르다기보다 실물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파트너가 바로 금융경제인 것이다.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금융경제의 충분한 발달 없이는 실물경제도 풍요로워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대 경제에서는 정부도 금융경제의 한 플레이어다. 우리나라의 실물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부자나라가 된다. 그래서 정부는 세금과 국채 같은 도구로 실물경제에 지원도 하고 투자도 하는 것이다. 정부의 금융경제를 특별히 '재정' 이라고 부른다.
유동성 공급 : 실물경제 살리려고 금융 풀었네
2020년 한 해 코로나 사태로 세계 실물경제가 죽어가는 상황, 앞에서도 설명했었다.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실물경제를 살려보려고 노력한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렌지와 조개껍데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제 조개껍데기를 이제 돈이라고 그냥하겠다.
재무부 장관 : 대통령님! 큰일이 났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기업과 상점들이 망해갑니다
대통령 : 어떻게 망해가고 있나?
재무부 장관 : 기본적으로 장사가 안 됩니다. 수익이 나지 않아서 기업은 월급 지급이 밀린 상태이고, 상점은 가게 낼 때 대출받았던 은행 빚에 이자도 못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 : 그럼 우리가 돈을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재무부 장관 : 맞습니다. 금리를 내려서 은행 이자를 싸게 해주고 기업에는 특별대출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대통령 : 그렇게 하게.
재무부 장관 : 월급 못 받은 사람들도 밖에서 돈을 쓸 수 있게 재난지원금도 현금으로 뿌릴거에요!
이런 대화를 나눈 후, 정부와 은행에서 잠자고 있던 돈이 기업과 상점으로 그리고 일반 소비자의 주머니로도 흘러 들어간다. 이것을 '유동성 공급' 이라고 한다. 왜 유동성 공급이라고 할까?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필자가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독자님, 제가 지금 1억 원을 드릴건데요. 현금으로 드릴까요, 양도성 예금증서로 드릴까요? 아니면 만기가 1년 후에 돌아오는 회사채로 드릴까요? 아니면 시가 1억 원 상당의 커피 원두로 드릴까요?
독자들은 웬만하면 현금을 선택할 것이다. 다른 선택지들은 팔아서 현금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도 해야 하고, 바로바로 쓸 수 있는 '돈' 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살 사람을 찾아서 팔아야 한다. 현금이야말로 바로바로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다. 이사람 지갑에서 저 사람 지갑으로 잘 흘러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돈을 푸는 걸 유동성 공급이라고 한다.
이자를 낮춰주면 이자를 안 낸 만큼 여윳돈으로 쌀을 살 수 있으니 쌀집에 돈이 들어가고, 기업에 특별대출을 해주면 대출을 받은 만큼 월급이나 하청업체의 물건 대금을 줄 테니 노동자와 하청업체에 돈이 들어간다. 재난지원금을 사람들의 주머니에 꽂아주면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으로 사 먹은 밥값만큼 식당에 돈이 풀리겠다.
어쨌든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에 유동성 공급이 됐다. 물건을 못 만들고 못 팔아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말이다. 정부는 이럴 때 움직이라고 존재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바이러스가 통제될 때까지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실물경제도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것이다.
돈은 정부가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를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는 바람에 경제활동이 중단되며 사람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정부는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쉽게 말해 돈을 푼 것이다. 이러면 실물경기가 살아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효과도 발생한다. 대표적인 효과로는 물가상승이 있다. 간단한 수요공급 법칙을 통해 물가가 오르는 이유를 알아보자.
모두에게 익숙한, 수요공급 법칙
정부가 시장에 돈이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금리를 싸게 내렸다. 이전과 같은 돈을 빌려도 이자를 적게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하면 수익이 이자보다 높을 것 같지 않을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대출을 받았다. 물론 우량 투자자들도 대출을 받았다. 이자 낼 돈은 원래도 많았는데 저렴해지니 더 부담 없이 빌린다. 우량 고객이기 때문에 더 많이, 더 장기간 빌릴 수 있다.
돈은 감당할 능력만 된다면 빌릴 수 있을 때 빌리는 것이 좋다. 투자를 해 이득을 보는 것이 부자 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막상 빌려놓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디에 투자하지? 지금 다 너무 난리라서 돈 넣어봤자 장사가 잘될 것 같은 곳이 별로 없네."
앞으로 장사를 잘할 것 같은 회사에 투자해야 이익을 볼 텐데, 지금은 다들 목숨 보전하기도 바빠 보인다. 고민하던 투자자는 결국 제일 안전하고 보수적인 자산에 돈을 넣는다. 부동산, 금 달러가 그것이다.
집 사서 후회하는 사람 못 봤다고 한다. 정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본인이 살거나 월세라도 주면 되니까 말이다. 금도 마찬가지다. 금 샀다가 금값이 떨어지면 세공비를 좀 주고 반지 만들어서 팔면 또 값이 뛴다. 이분들이 사는 금의 단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 돈, 두 돈의 단위가 아니다. 달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온 세상의 무역 거래가 다 달러로 결제된다. 달러가 필요 없어지는 날은 왠만해서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전 세계 부자들이 부동산과 금과 달러를 사니까 조금 더 작은 부자들도 따라 산다. 그러다가 여육돈이 아주 조금 있는 일반인도 따라서 투자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부동산과 금과 달러의 값이 오른다. 사람이 거주할 만한 집과 채굴된 금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 너도나도 사려고 하면 부르는 것이 값이 되기 마련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익숙한 원리가 여기서 나온다. 바로 '수요공급 법칙' 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르고, 오른 가격으로 장사를 해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공급도 늘어난다. 그러다 물건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아지면 물건이 남아돌아, 다시 가격이 떨어진다. 수요와 공급 사이에 밀고 당기기가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점에서 만난다.
갑자기 생긴 공돈, 재난지원금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다. 현실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그렇게 빠르고 적절하게 균형을 찾기 어렵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수요가 한 번에 몰리는데 공급은 제때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물건의 공급량은 그대로인데 소비자의 돈만 많아지면 균형가격은 어떻게 될까?
가격만 올라가게 된다. 이런 현상을 어려운 말로 '유동성 인플레이션' 이라고 하고, 쉬운 말로는 돈이 풀려서 물가가 올라갔다고 한다. 2020년에 우리 주변에 흔히 벌어진 일이다.
2020년 5월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신용카드로 돈을 받아 선불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사용하러 들른 전통시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상인 : 11,000원!
손님 : 얼마 전에는 10,000 이었잖아요?
상인 : 아, 재난지원금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 떼. 그거 더해서 그래.
손님 : 뭐 다른 카드는 안 떼요? 신용카드로 결제한다고 돈 더 받지는 않잖아요!
상인 : 아, 어차피 공돈인데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어차피 공돈인데' 여기서 이 말이 중요하다. 위의 상황은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뉴스에도 보도됐다.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시장에서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가정해보자.
상인 : 11,000원!
손님 : 얼마 전에는 10,000원이었잖아요!
상인 : 손님 이번에 연봉 올랐다면서. 손님한테만 11,000원이야.
손님 : 그건 제 사정이고 이건 누구한테나 10,000원이어야죠.
첫번째 상황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상인을 나쁜 상황이라고 하겠지만, 두 번째 상황과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상인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재난지원금은 다른 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더 생긴 돈이다. 나한테만 더 생긴 돈도 아니고 모두에게 더 생긴 돈이다. 윤리와 도덕, 그리고 시장에서 이뤄진 합의로 우리는 10,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물건을 10,000원에 사고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공돈'이 생겼으면 그 만큼 물건 값을 올리고 싶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이기심이다.
개별 사례로 보면 상인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공돈이 생기고 나도 모르는 사이 공돈을 쓰게 되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물건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20만 원씩 생겼다고 가판에 진열된 물건 개수가 자동으로 20만 원어치 더 늘어나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는 20만 원씩 더 생겼고, 물건은 한정 되어 있읜 20만 원 내에서 돈을 좀 더 많이 내는 사람이 구매하게 되겠다.
회사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황을 생각해볼까? 우리 공장에서 생상하는 월 '카파 (생산량)' 이 한정돼 있는데 그 물량을 몽땅 주문하는 거래처가 두 곳 생긴다면 납품가를 좀 더 많이 쳐주는 갑님과 우선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럼 우리 회사의 물건 가격은 거기서 결정이 된다. 더 싸게 부르는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미 생산된 물건은 정가에 팔겠지만 분명히 소비자용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재난지원금도 풀렸겠다, 앞으로 삼마트에 공급하는 그 과자의 납품가를 10원 더 올려 부르자. 10원 오른 이윤은 삼마트하고 우리가 나누면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유동성이 공급되면 물가가 오른다. 특히 부동산과 금, 달러처럼 왠만해선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안전자산은 더더욱 오르게 된다. 남은 돈이 갈 데가 따로 없다.
동학개미는 석유를 돈 받고 사고 싶었네
우리나라는 돈이 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바로 주식이다. 회사가 장사를 못 하니 실적이 안 나온다. 모아뒀던 돈도 다 빼내서 직원 월급 주고 퇴직금 주고 문 닫는 상황이다.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너도나도 주식을 팔았다. 싼 가격이라도 살 사람이 남아 있을 때 얼른 털고 더 큰 손해를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어차피 투자할 곳도 없는 건 매한가지니까 부동산도 사고 금도 사고 달러도 살 거지만 주식도 사보자는 열정이 집단적으로 솟구친 것이다. 이전까지 IMF 외환위기라든가 2008년 금융위기 등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국 회사의 주식은 가치가 뚝 뚝 떨어졌다. 하지만 매번 다시 올랐다. 가격이 떨어질 때 놀라서 판 사람들은 손해를 봤고, 얼른 산 사람들은 나중에 이익을 봤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일시적으로 주식 가격이 떨어져도 나중에는 오를 거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그 동안의 역사를 통해서 배운 것이었다.
그렇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팔자 삼성전자, 네이버,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처럼 비싼 주식들이 순간적으로 저렴해졌다. 망할 확률이 굉장히 낮은 대기업이다. (하지만 망할 확률이 낮다고 해서 주식 가격이 오르는 건 아니다. '망할 확률이 낮다' 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사기 때문에 주식 가격이 오르는거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아무리 건실한 기업이라도 사람들이 잘 몰라서 주식을 거래하지 않는다면 주가는 낮게 형성된다. 환율에서도 마찬가지다. )
평소에 대기업 주식을 살 여윳돈이 없어서 바라보고 있던 평범한 사람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국인이 내던진 주식을 샀다.
역사는 반복됐고, 몇 달 가지 않아 주식시장은 전반적으로 다시 올라왔다. 그 시기에 주식을 샀던 분들은 아직도 이익을 보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한 상황이지만 2020년 4월에서 6월 사이 돈이 좀 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투자자 A : 주가가 회복되고 나니 3월처럼 확 떨어지질 않아요.
투자자 B : 확 떨어졌다가 확 오르질 않으니까 잠깐 넣었다가 빼는 걸로는 돈이 안 벌려요.
주식은 도박이 아니다. 한 회사의 가치가 어느 날에는 100원이었다가 어느 날에는 1억 원이라면 그 회사의 영업활동은 전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는 무척 예외적인 사태였고 주식의 전반적인 폭락과 폭등도 예외적인 일이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어디 그런가. 돈을 든 사람들은 지금 그 가격이 굉장히 저렴한 것, 그러나 인류에게는 꼭 필요해서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그래서 앞으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당시 마이너스 가격을 찍고 있던 원유 (석유) 였다.
코로나와 석유 가격이 무슨 상관?
원유가 왜 마이너스를 찍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세계의 실물경기가 멈췄기 때문이다. 원유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기에 챕터4에서 다시 길게 다룰 것이다. 지금은 다음의 내용만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현대 문명에서 석유가 개입하지 않는 물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비닐도 플라스틱 모두 석유에서 만들어지고 석유 그 자체도 온갖 곳의 연료로 쓰인다. 뒤집어 말해서 석유가 그렇게 많이 쓰이는 이유는 세계가 쉴 새 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맞아 공장들이 멈췄으니 석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땅속에 묻혀 있던 석유가 나오는 시추공은 수도꼭지처럼 마음대로 열었다가 닫을 수 있는 그런 구멍이 아니다. 한 번 구멍을 뚫으면 엄청난 압력으로 석유가 솟아오르기 때문에 계속 옮겨 담아서 창고에 저장하든가 정제공장으로 운반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못 쓰게 막아버려야 하는데, 원유가 솟아오르게 두는 것보다 시추공을 안전하게 막는 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그러니 2020년처럼 세계의 공장들이 멈춰버리면 그 해에 쓰려고 뚫어놓은 시추공에서 나오는 석유는 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원유처럼 해외에서 나는 제품에 투자해야 할 때는 꼭 염두에 둬야 하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환율이다. 아무리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일 때 유가 상품에 투자했어도 원화를 달러로 바꿔서 투자한 다음 다시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하고, 수수료 등 부대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외국 상품에 투자할 때는 환율까지 고려를 해서 생각보다 더 많은 수익이 나야 진짜로 내 손에 돈이 들어오게 된다.
시간과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써야 하는 돈을 들고 있었다면 지난 4~6월의 원유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꽤 위험한 결정이었다.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곧 이익
지금까지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요새 안 좋아진 실물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에서 금융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금리를 낮추고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돈을 많이 풀었다. 그렇게 유동성이 과잉 공급되는 바람에 부동산과 금, 달러 등 안전자산을 포함한 상품들의 물가가 올랐고, 공장들이 멈춰버려서 석유 수요가 줄어들자 유가는 떨어졌고, 그곳에 투자한 사람들은 환율을 생각할 때 2020년 기준으로 아직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수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한 치명적인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니까 그 때 우리는 남들보다 반 발자국 빨리 대처를 해야 한다. 금리를 안다고 해서 더 비싼 적금에 들 수 있을까? 환율을 안다고 해서 환전할 때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환전할 수 있을까? 개개인은 이미 주어진 경제적 조건을 바꾸기 어렵다. 일개 회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소한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닥쳤을 때 '빨리 발을 뺄 수는' 있다. 사실 이득을 보는 것보다 손해를 덜 보는 것이 가장 어렵고 또 중요하다. 언제 그만둬야 할지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들보다 손해를 덜 보면 사실 그만큼 이득을 보는 셈이다. 경제는 다시 회복될 테고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남들보다 더 갖고 시작하게 되니 말이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금리, 환율, 유가에 대한 이해도는 여러분의 무기가 되어 줄 수 있다. 이 3가지 무기의 다른 이름은 금융과 무역이다.
앞으로 금리 → 환율 → 유가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알기 위해 우선 몇가지 경제학 용어와 경제 법칙을 알아야 한다.
알아두면 삶에 유용한 가장 기본적인 경제용어와 법칙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고 해도 경제기사에는 기본적인 경제학 용어들이 사용된다. 다른 경제정보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료를 추리고 추려서 알고 있으면 무엇이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5가지 용어를 골라보았다.
바로 '시장, 수요공급 법칙, 통화량, 인플레이션, 주가' 다.
거래가 있는 모든 곳이 '시장'
각종 경제뉴스나 경제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보면 다들 자연스럽게 '시장에서는~'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시장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명쾌하게 답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모두가 정확히 뭔기 모르는 개념이다. 그러면 설명이 길어지니 이제부터 이렇게 요약하면 된다.
시장은 무엇이든 대가를 치르고 사려는 사람과 대가를 받고 팔려는 사람이 만나는 곳입니다.
이것을 더 짧게 요약할 수 있다.
시장은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만나는 곳입니다.
어떤 경제학 교과서나 경제학 관련 대증서를 보아도 비슷하게 정리해놓았다.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있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존재한다면 시장은 성립한다. 동네 전통시장일 수도 있고, 대형마트일 수도 있으며, 인터넷일 수도 있고, 주식거래창이나 미용실이나 인력채용 면접일 수도 있다.
물론 시장이 '어느 곳' 에서 성립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모두 다르다. 이 시장에서 적용되는 규칙이 저 시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시장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가격이 형성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합의를 보는 가격을 균형가격이라고 한다, 균형가격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이익을 얻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데도 거래가 성립된다면 그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 '다른 이유' 는 정치나 관습이나 문화, 숭고한 희생이나 구조적인 불평등, 심리적인 원인이나 무지로 인한 오해, 잘못된 의사소통 등이다.
아니면 아직 인류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다른 이익 종류가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이익' 은 꼭 돈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기분 좋은 경험이나 삶의 질 개선, 따뜻한 온도나 병이 낫는 것 같은 각종 편익도 이익이라고 하고, 경제학에서는 이 모든 이익을 통들어 '효용' 이라고 표현한다.
양쪽의 효용을 개선하지 않는 거래는 보통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거래는 아니다. 효용이 개선되기 때문에 거래를 하고, 상호 거래를 하기 때문에 시장이 생기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돈을 사고파는 시장과 석유를 사고파는 시장이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돈 자체도 돈을 주고 거래한다. 한국 원화를 주고 미국 달러를 살 수도 있다. 미래의 돈을 현재의 돈으로 사기도 한다.
거래의 밀당, 수요공급 법칙
구매자와 판매자, 그리고 균형가격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요약한 것이 수요공급 법칙이다.
구매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자 하는 역할을 하므로 '수요', 판매자는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므로 '공급' 이라고 하겠다. 구매자는 물건 가격이 싸면 쌀수록 더 많이 사려고 한다. 원래 가격에는 안 사려고 했던 사람도 물건이 반값이 되면 한 번 사볼까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대로 판매자는 물건이 싸지면 별로 안 팔고 싶어한다. 공장주라면 생산을 멈추고 싶을 테고, 중간 상인이라면 그 가격에 팔아봤자 손해니 물건을 안 떼오고 싶을 것이다. 가게 주인이라면 그 눌건을 자기 매장에 별로 안 들여놓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가격에 따라 수요와 공급은 서로 반대 방향의 선을 그린다. 그리고 그 두 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거래가 성사된다. 수요공급 곡선에서 마주보는 점을 바로 균형수요량, 균형공급량, 균형가격이라고 한다. 균형은 고정적이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균형도 변한다. 공급이 그대로인데 수요만 늘어나면 균형점이 위로 올라가면서 가격이 비싸질 테고, 수요가 그대로인데 공급만 늘어나면 균형점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가격이 저렴해진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움직이면, 무엇이 얼마나 더 움직이는가에 따라 균형점이 변할 것이다. 만약 균형가격이 있는데도 시장에서 그것보다 더 싸거나 더 비싼 가격으로 물건이 거래된다면 언젠가는 균형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돈을 사고 파는 시장에서도 수요공급 법칙은 분명하다. 보통은 모두가 미국 달러를 원한다. (거래에서 제일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 달러를 상품이라고 하고 다른 나라 돈으로 달러를 사야할 때, 그 시장에서 달러가 얼마나 필요한지, 달러를 팔 사람은 얼마나 갖고 있는지에 따라 환율이 결정된다.
사람이 만나서 가격을 치르고 뭔가를 거래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적용되는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돈이 빛을 보는 순간
은행은 돈을 찍어내지 않는다. 한국은행도 돈을 찍어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지폐와 주화는 한국조폐공사가 찍어낸다. 한국조폐공사는 한국은행이 매년 만들어 달라는 만큼만 지폐와 주화를 만들어준다. 그 돈은 한국조폐공사의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가 한국은행을 통해 시장에 나온다.
그 돈이 어떻게 시장에 풀리는가 하면 일반 은행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한국은행은 개인과 거래하지 않는다.) 정부에게 빌려주면서 빛을 보게 된다. 또 각종 채권을 일부로 사기도 한다. 한국은행이 카카오의 10,000원짜리 회사채를 사게 되면 카카오는 10,000원이 생긴다. 그러면 그 10,000원은 카카오가 하청업체에 대금을 지불하거나 직원들 월급 주는데 사용될테고 그러면 시장에 돈이 풀리게 된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나중에 한국은행에 11,000원으로 돌려줘야 하지만 얼마든지 만기를 연장할 수 있어서 큰 부담은 아니다. 이처럼 시장에 직접 현금을 공급해야 할 때는 한국은행이 직접 각종 채권을 매입한다. 물론 한국은행 자체에서 한국은행채권을 발행하기도 한다. 이 채권은 외국에서 사가는 일이 잦다. 그렇게 외국 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외화도 관리한다.
은행이 부리는 마법, 화폐 창조와 통화량
그렇다면 돈은 한국은행만 다룰까? 아니다. 단순히 국내 시장에 돈을 돌게 만드는 데는 시중 은행의 역할이 더 크다. 시중 은행들은 '화폐 창조' 라는 마법을 부린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국조폐공사가 찍어낸 돈의 양이 모두 1억 원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시장에 쓰인 돈의 합계도 1억 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수십 년간 물건을 사고 받은 영수증과 회사와 회사 간 거래를 하고 받은 세금계산서에 찍힌 총 금액도 1억 원일까?
얼핏 생각해도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수십 년간 발행된 영수증과 세금계산서 금액의 총합은 어떤 AI를 가져와도 계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찍어낸 돈은 모두 1억인데, 왜 영수증의 총합계 비용은 파악하기 어려울까? 그건 은행이 화폐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월급10,000원을 받아 그 중 1,000원을 은행에 예금하기로 했다. 우리의 1,000원은 항상 통장에 찍혀 있고 언제든지 그 돈을 인출해 결제할 수 있다. 은행에서는 우리의 돈 1,000원을 받으면 그중 7%인 70원을 한국은행에 의무적으로 예금한다. 이걸 '지급준비금' 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예금자 돈의 일부를 안전하게 떼어놨다가 나중에 비상사태가 오면 사용한다. 그리고 나머지 930원은 마침 소액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 빌려주었다. 소액대출을 받은 그 사람은 930원 중 300원으로 구두를 샀다. 구두 가게 사장님은 구두 값으로 받은 300원 중 100원을 저축했다.
실제로 더 인쇄된 돈은 없는데 모두가 쓴 돈을 합쳐보면 이렇다.
1,000원 (은행에 예금한 돈)
+ 70원 (한국은행에 간 돈)
+ 930원 (은행이 소액대출로 빌려준 돈)
+ 300원 (구두값)
+100원 (구두 가게 사장님이 저축한 돈)
---------------------------------------------------
= 2,400원
우리는 은행에 1,000원을 맡겼을 뿐인데 이 돈으로 쓰인 합계 금액을 살펴보면 2,400원어치나 된다. 여기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돈 9,000원 까지 더하면 11,400원이다. 이걸 바로 화폐 창조라고 한다. 유동성이 높다는 말은 화폐 창조가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유동성이 너무 높다 싶으면 지급준비금 비율을 높여서 은행이 시중에서 창조할 수 있는 돈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도 한다. (금리 조절 정책을 더 자주 사용하기는 한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현재 사람들이 쓴 11,400원을 경제학에서는 바로 '통화량' 이라고 부른다. 돈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아다닌 수량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여기서 화폐 창조를 배운 이유는 단 하나다. 정부가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많이 찍어내는 등 시장에 돌아다니는 화폐량을 늘렸을 때 경기가 활발해지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간단하게 다음 4개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유동성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시장에 돈을 많이 쓰게 된다.
· 우리는 원래 찍어낸 돈의 총량보다 훨씬 많이 쓸 수 있다.
· 실물경제가 나빠지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서 유동성을 공급한다.
· 결과적으로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경제가 회복된다.
화폐 가격의 척도, 인플레이션
돈이 너무 빨리 돌면, 다른 말로 유동성이 너무 많이 공급되면 물가가 오른다. 이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물건을 살 때 지불하는 돈의 액수가 늘어났다면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화폐의 실질적인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이전에 100원에 주고 사던 손톱깎이가 이제는 200원이 됐다면 물가는 2배 오르고 화폐의 값어치는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수요와 공급에서, 수요는 늘어났는데 공급은 그대로거나 수요보다 적게 늘어난다면 한정된 물건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기 때문에 균형가격이 올라간다.
경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래된 도자기 하나를 구하려고 사람들이 값을 올려가며 부른다. 이걸 '수요 인플레이션' 이라고 한다.
비용 인플레이션도 있다. 수요도 그대로고 공급도 그대로인데, 공급할 물건을제조하는 제조비용이 전반적으로 늘어나서 가격이 뛰는 것이다. 회사가 물건을 손해보면서 팔지는 않으니 말이다. 유가가 여기서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석유를 모두 수입해 오는데 석유로 만드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세계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물가는 다 오르게 되어 있다.
2019년 일본이 삼성전자에서 만드는 반보체의 핵심 소재가 되는 '불화수소'의 수출을 금지한 적이 있다. 그때 전 세계가 모두 반도체 인플레이션을 걱정했다. 전 세계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불화수소를 구할 수 없거나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적은 양의 불화수소만을 구한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조금밖에 못 만들게 되면 반도체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갈 테니말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국내 불화수소 제조 기업과 거래를 하게 되어 우려했던 반도체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 가치 산정의 기준, 주가
주식 가격이 올라가면 해당 회사가 돈을 더 벌게 되는 걸까? 아니다. 주식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해당 회사가 직접적으로 돈을 더 벌지는 않는다. 회사가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경우는 회사가 스스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오른 가격에 팔았을 때뿐이다. 회장님이 주식 값이 30% 올랐을 때 10만 주 정도 팔면 차익을 많이 남기겠다. (하지만 보통 주식이 올랐다고 해서 자기 주식을 팔지는 않는다. 경영권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그 회사의 주식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식 가격은 그 회사가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이고, 회사는 결국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물건을 잘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언제나 투자와 대출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식 가격은 꽤 중요하다.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때도 주식 가격으로 하게 된다.
경제뉴스에 나오는 '시장' 정확하게 이해하기
경제뉴스를 보다 보면 시장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식으로 등장한다.
·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 시장경쟁에서 이기려면~
·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우리 기업~
· 이렇게 어려운 취직 시장에서 선택받으려면~
우리는 앞에서 시장이 뭔지 정리하고 왔지만, 경제뉴스를 읽다보면 사실 '시장' 이 무엇이냐고 설명해보라고 하면 버벅거리게 된다. 그래도 대략 '물건이든 사람이든 서비스를 사고파는 곳' 아니냐 정도로 이해만 해도 전체 문장을 읽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대충 뭔지 아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함정이 있다. 잘 보면, 시장은 언제나 전쟁터처럼 등장한다. 이기거나 지거나, 선택받거나 선택받지 못하거나 하는 장소처럼 말이다.
경제뉴스에서는 저런 내용 뒤에 대부분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연결한다.
· 어떻게 하면 이긴다.
· 이렇게 하면 진다 (그러니까 잘해라).
· 이겨라! 이겨라!
이런 충고 내지는 지적이 이어진다. 그런데 시장이 정확히 뭔지 모르면 이 충고가 믿을 만한 것인지, 이 지적이 얼마나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보통 이런저런 기사나 뉴스에서 등장하는 시장은 경제학원론 맨 처음에 나오는 시장입니다.
① 물건 A가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A는 무한한 재고가 있고, 색깔이며 크기까지 똑같다.
② 이 A를 파는 사람들이 무한대로 있고, 사려고 하는 사람도 무한대로 있다.
③ 다들 무한대로 있기 때문에 저 친구가 안 팔아도 누군가는 팔아준다.
④ 물론 내가 안 사도 다른 누군가는 사게 되어 있다.
⑤ 그러니까 재고가 1,000개 있어도 안 팔고 싶으면 안 팔아도 상관없다.
⑥ 살 때는, 내가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사지 않아도 그만이다.
⑦ 게다가 A의 품질이 어떤지, 어딜 가면 누가 얼마나 사고 얼마나 팔릴지 다들 완벽하게 알고 있다.
⑧ 만약 A를 사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야 한다고 해도 교통비는 내지 않는다.
⑨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은 물건에 대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수박의 속살, 중고차의 성능까지 모두 말이다.
이런 시장을 '완전경쟁시장' 이라고 한다. 경제뉴스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종종 보게 될 것이다.
· 물건을 싸고 좋게 만들면 무조건 잘 팔리게 되어 있다.
·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청년들의 눈이 높아서다.
· 법인세를 내리면 외국 기업들이 대한민국으로 반드시 몰려온다.
· 당차게 창업해라. 안 팔리면 회사 접으면 될 것 아니냐.
· 경쟁은 좋은거다. 민영화하면 효율성이 커진다.
· 정부 규제는 나쁘다.
· 정부가 알아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이런 지적은 모두 '완전경쟁시장' 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 물건을 싸고 좋게 만들면 무조건 잘 팔리게 되어 있다.
→ ⑦ 게다가 A의 품질이 어떤지, 어딜 가면 누가 얼마나 사고 얼마나 팔릴지 다들 완벽하게 알고 있다. ,
⑨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은 물건에 대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수박의 속살, 중고차의 성능까지 모두 말이다.
·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청년들의 눈이 높아서다.
→ ② 이 A를 파는 사람들이 무한대로 있고, 사려고 하는 사람도 무한대로 있다. ,
⑦ 게다가 A의 품질이 어떤지, 어딜 가면 누가 얼마나 사고 얼마나 팔릴지 다들 완벽하게 알고 있다.
→ 취업의 질은 둘째치고, 전체 뽑는 인원보다 사람이 더 많으면 누군가는 실업자가 되는 거 아니냐, 게다가 조건 안 좋은 기업에 지원하면 무조건 뽑히는 줄 아냐.
· 법인세를 내리면 외국 기업들이 대한민국으로 반드시 몰려온다.
→ ② 이 A를 파는 사람들이 무한대로 있고, 사려고 하는 사람도 무한대로 있다. ,
⑦ 게다가 A의 품질이 어떤지, 어딜 가면 누가 얼마나 사고 얼마나 팔릴지 다들 완벽하게 알고 있다. ,
⑧ 만약 A를 사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야 한다고 해도 교통비는 내지 않는다.
→ 일단, 굳이 법인세 때문에 국적을 옮기려는 회사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을 뿐더러 회사를 경영하는 데 법인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요소도 있을 거 아니냐. 보통은 나라를 옮겨서 이사하는 비용이랑 인지도 새로 쌓는 비용이 더 든다.
· 당차게 창업해라. 안 팔리면 회사 접으면 될 것 아니냐.
→ ② 이 A를 파는 사람들이 무한대로 있고, 사려고 하는 사람도 무한대로 있다. ,
⑦ 게다가 A의 품질이 어떤지, 어딜 가면 누가 얼마나 사고 얼마나 팔릴지 다들 완벽하게 알고 있다. ,
⑧ 만약 A를 사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야 한다고 해도 교통비는 내지 않는다.
→ 사장님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아냐. 그리고 실패했을 때 재취업 해야 하거나 회사 운영하면서 진 빚을 갚거나 하는 위험성은 어떻게 감당할거냐.
· 경쟁은 좋은거다. 민영화하면 효율성이 커진다.
→ ① 물건 A가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A는 무한한 재고가 있고, 색깔이며 크기까지 똑같다. ,
② 이 A를 파는 사람들이 무한대로 있고, 사려고 하는 사람도 무한대로 있다. ,
③ 다들 무한대로 있기 때문에 저 친구가 안 팔아도 누군가는 팔아준다. ,
④ 물론 내가 안 사도 다른 누군가는 사게 되어 있다.
→ 경쟁은 효율성을 증대시키지만 그것도 물건 나름이다. 전기나 수도 같은 자원은 무한하지 않고 팔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다.
· 정부 규제는 나쁘다.
→ ③ 다들 무한대로 있기 때문에 저 친구가 안 팔아도 누군가는 팔아준다. ,
⑥ 살 때는, 내가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사지 않아도 그만이다. ,
⑧ 만약 A를 사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야 한다고 해도 교통비는 내지 않는다.
→ 현실에서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회사는 그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공공재의 경우 정부가 생산해야 충분히 공급이 된다. 독점이나 과점기업은 사회에 손해를 주기 때문에, 정부가 독점기업을 없애지는 않더라도 규제를 어느 정도 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며 경제학원론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이 '완전경쟁시장' 은 맨 처음에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경쟁시장이 될 수 없는 조건을 하나씩 추가해 나간다. 완전경쟁시장은 마치 '서울대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라고 물어봤을 때 '응, 공부를 잘 하면 돼.' 라고 하는 것이다. 아주 완벽한 정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기에 완벽히 달성하기 힘든 조건들이 하나씩 더해진다. 그런데 내신도 좋아야해. 수능도 잘 봐야 하고, 수시를 볼 건지 정시를 볼 건지도 생각해봐야 해. 과외를 받아야 성적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집에서 과외비는 어디까지 해주실 수 있대? 만약 한 번에 합격을 못하면, 재수나 삼수까지 가능해? 이런 식으로요.
물론 정답은 정답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이론에만 매달리면 현실을 잘못 이해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 기사를 볼 땐 정답에 더해 각종 제한조건을 같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게 이론상 정답이긴 하지만.
→ 이런 이유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답이 되기가 힘들다.
→ 그러니까 이런 보완을 하면 정답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다.
위 3개의 문장의 틀로 기사를 해석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만의 경제뉴스를 읽는 안목이 생겨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경제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하지만 충분한 만큼의 경제학적 이론과 용어를 살펴봤다. 지금까지가 준비운동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용어 설명보단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들을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 가만히 살펴보면, '와, 수요공급 법칙과 유동성 이 2가지만 알아도 정말 많은 부분이 설명되는구나.' 싶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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