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II 반복되는 위기 속 하나의 진실
진화하는 경제, 그리고 경제학
◆ 재난과 경제
01 붕괴와 재난에서도 배운다
02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한 사람들
03 다시, 경제의 출발점에서
◆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경제적 관심사
부록 | 용어 해설·찾아보기
◆ 재난과 경제
사회가 늘 안정되고 번영을 누리면 좋겠지만, 인류의 역사는 사실 수많은 재난으로 가득하다.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전쟁, 기근, 화산, 폭발, 감염병 등 사람들의 목숨과 경제적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례도 너무나 많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도 재난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인명과 소득의 손실은 물론이고, 비대면 활동이 보편화되고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현상,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추세 등 여러가지 급속한 변화들이 발생했다.
재난을 역사적으로 구분해볼까? 우선 근대 이전까지는 자연 재해가 대부분이었다.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냉해, 태풍 등이 수시로 찾아왔다. 200여 년 전 산업화 시대가 개막한 후에는 산업재해와 같은 인공적 재해가 핵심 문제로 등장했다. 공장과 탄광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직업병, 낯선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재해 등이 인류의 건강과 삶을 위협했다. 통신망, 교통망, 전력망 등으로 촘촘히 얽힌 현대 사회는 어떨까? 하나의 사고가 중충적 망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시스템 재해가 새로운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 덕분에 우리 삶이 과거보다 훨씬 안전해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네' 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필기노트
01. 붕괴와 재난에서도 배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 조지 산티야나
#불황 #침체 #금융위기 #감염병
호황과 불황은 반복된다. 역사 속 경제위기를 돌이켜 보면, 위기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는 오늘을 이겨낼 힘을 주고, 위기는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위기
불황
시간이 갈수록 경기가 나빠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
신용의 고갈
경제위기들의 공통점.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해지는 현상.
① IMF 외환위기
1997년 기업들이 달러화로 진 빚을 갚지 못해 생김.
②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번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상환되지 않으면서 가계, 기업, 금융기관이 함께 파산.
참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교적 낮은 신용등급의 주택담보대출.
③ 대공황 1929년 신용 계좌가 넘쳐나던 주식시장이 붕괴하며 시작됨. 연준의 금리 인상 탓에 공황으로 이어짐.
→ 하지만 대공황 때 얻은 교훈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함.
감염병이 만든 위기
감염병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찾아오는 경우
① 스페인 독감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피폐해진 독일 경제를 무너뜨림. 나치 집권의 배경이 됨.
② 흑사병 유럽의 경제 구조를 바꿈.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앞당긴 역사의 전환점.
③ 코로나19 전 세계적인 감염병 위기. 비대면 경제, 자국 우선주의, 큰 정부 등을 불러세움
→ 위기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함.
챕터 이야기
01장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라는 단어와 저당권, 파생상품, 대공황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역사를 통해 경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경제활동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사회를 경험해보면 노동이 여러 경제활동 중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가, 대출, 이자, 부동산, 환율···. 경제의 세계에는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 때문에 갑자기 불행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누가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엄청 벌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경제 정책이 나에게 불리하게 바뀌었다는 뉴스를 보면 상관 없다고 무시하기에는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대부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 때문에 갑자기 불행해지지 않을까 두려움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위기는 다시 돌아온다. 크고 작은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시대마다 발생해왔다. 전쟁이나 혁명, 감염병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단서를 역사에서 찾아본다. 수차례 반복된 경제위기의 본질을 알면 오히려 막연한 두려움은 덜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라도 경제의 눈으로 보면 새롭게 보일 것이다.
가계나 기업에 돈이 활발하게 돌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소득수준과 소비 욕구가 높아지는 상황을 호황이라고 한다. 그러면 호황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바로 불황이다. 불황이란 경기침체란 비슷하다. 시간이 갈수록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을 뜻한다. 즉 사람들의 삶이 불행해진다. IMF 외환위기처럼 큰 불황이 닥치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 더 나아가 이런 불황은 왜 일어나는 걸까?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불황의 원인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어 여기에 대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불황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신용의 고갈' 이다. 앞에서 IMF 외환위기를 예로 들었으니 이것을 예로 들어서 IMF 외환위기는 이름 그대로 외환, 달러화가 고갈됐기 때문에 일어났다. 어디에 쓸 달러화가 부족했기에 국가 부도 사태까지 이어졌을까? 국가가 달러화로 진 빚을 갚을 수가 없어서 부도가 난 것이다. 돈을 갚아야 하는데 갚지 못하는 이 상황을 '신용이 고갈됐다' 고 표현한다.
일반 가정이 빚을 못 갚으면 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는 것처럼 IMF 외환위기 당시에 빨간 딱지가 붙어야 하는 곳은 대기업이나 은행, 증권사가 대부분이었다. 중산 씨가 겁없이 빚을 내서 사업을 확장했던 것처럼 대기업과 금융기관도 감당 못할 빚으로 사업을 운영했던 것이다. 그 빚의 대부분이 당시 원화보다 금리가 낮았던 달러화였다.
남의 돈으로 벌인 잔치가 끝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해외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신용이 빠르게 고갈됐다. 다른 금융위기들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이런 일이 1997년보다 최근 2008년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사건이 있다. 여기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단어를 설명한다. '프라임 prime' 이라는 단어는 '최상위의, 우량한' 이라는 뜻이다. '서브프라임 subprime' 이라고 하면 그보다 못한 아래 등급을 의미한다. '모기지 mortage' 이 단어는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과 비슷하다. 즉, 부동산을 담보로 내주는 대출 중에서도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내준 비우량 담보대출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요새 집을 살 때 수중의 현금만으로 구입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워낙 큰 돈이 필요하니 일단 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부족한 돈을 대출받아 집을 산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 그 빚을 갚아나간다. 이렇게 하면 일단 집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지만, 여기서 빚을 못 갚을 경우 집을 처분할 수 있는 저당권은 은행이 갖는다. 쉽게 말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빚을 못 갚으면 은행이 집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은행이 이 집을 팔 수 있는 권리, 즉 저당권을 일종의 증권으로 만들어 다른 투자기관에 팔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채권을 거래하듯 말이다. 중산 씨가 투자금을 조달할 때 채무에 대한 권리를 남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채권을 발행했었다. 그게 채권시장에서 거래됐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저당권을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할 수 있다. 채권을 발행한 사람처럼 빚을 끼고 집을 산 채무자 역시 저당권을 산 사람에게 금융기관을 통해 원금과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출 상품으로 이렇게 부실한 대출에 대한 저당권으로 만든 금융상품은 당연히 위험성도 높지만 그만큼 금리도 높은 투기성 상품일 가능성이 크다. 대출을 받은 사람의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저당권으로 만든 금융상품의 이율은 높아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 주택시장은 장기간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서 시중에 돈이 엄청나게 많이 풀렸고, 그렇게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호황을 만들어냈다. 금리가 낮을 때는 대출이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른다는 말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로인해 집을 사면 빚이 없어질 정도로 올랐다. 예컨대 대출 2억을 끼고 3억짜리 주택을 샀는데 주택값이 5억이 올랐다고 하고 그 주택을 팔기만 하면 대출금이 다 상쇄돼버린다. 집값이 계속 오르기만 하면 집을 산 사람은 빚을 못 갚을 걱정이 없고 돈을 빌려준 사람, 즉 저당권을 매수한 사람도 돈 떼일 걱정도 없다. 문제는 집값이 꾸준히 오른 만큼 빚도 빠르게 쌓여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부동산 대출을 발판 삼아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 모기지를 사들여 여러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파생상품이란 예금, 주식, 채권 같은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을 말한다. 부동산 저당권을 채권처럼 만들어 내다 팔고, 또 그 채권들을 잘 섞고 포장해서 평균 위험도가 낮은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내다 파는 식이다. 저당권을 증권으로 만들어 팔고, 그 증권을 또 다른 파생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파생상품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또 다른 저당권을 사들여 계속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당시 모기지 파생상품이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은행, 금융기관, 일반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모기지로 만든 금융상품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누군가는 계속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고 있었다는 뜻이다. 서브프라임 등급, 즉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까지도 고이율로 빚을 엄청나게 지고 집을 서너 채씩 구입할 정도였다. 모두가 올라가기만 하는 부동산 가격에 취해 벌인 돈 잔치였던 것이다. 그 상품의 본질이 빚이라는 사실은 잊은 채 말이다. 하지만 빚은 무한정으로 돈을 뽑아내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2004년 저금리 정책이 끝나고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대에서 3%대로 높이자 민간을 대상으로 한 대출 금리 역시 따라 올랐고, 그렇게 파국이 시작됐다. 특히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출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낮은 소득에 비해 높은 이자를 내고 있었으니 엄청난 부담이었다. 집값이 오를 거라는 믿음 하나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매달 내는 대출 이자가 금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결국 많은 이들이 빚 갚기를 포기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문제는 이렇게 파산을 신청해 금융권에 넘어간 담보 주택이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저당권을 가진 금융기관이 팔아야 할 부동산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금리가 인상되면서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수요는 오히려 줄어든 상황이다. 이제 주택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집을 포기하면서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동시에 집값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모기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파생상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때는 아주 인기 있는 투자처였지만 가계가 파산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모기지 파생상품들은 아무 가치가 없는 휴지 조각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동안 절대 망할 리 없다고 믿었던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 등 대형 금융 회사마저 연달아 무너졌고 미국 경제와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 경제가 다 같이 침체를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 IMF 외환위기 사태랑 비슷하다. 본질은 같다. 결국 빚을 갚지 못했기 때문에 즉 신용이 고갈되어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금리르 0% 대로 낮추고 수년간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다. 유럽연합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선진국 역시 극단적인 저금리 정책을 이어가면서 분투했다. 사실 다른 나라가 억욱할 수 있으나 꼭 억울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동안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 호황 역시 미국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국제금융 확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흥미로운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유럽처럼 심각한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정부와 기업 모두 재정적자를 경계하면서 넉넉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한 것이 이유였다. 한 차례 시련을 겪었기에 위기에 대비한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불황의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신용의 고갈이다. 빚을 갚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지면 불황이 발생한다. IMF 외환위기는 기업의 신용,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가계의 신용이 고갈되어 나타난 위기였다.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그 자체는 금융 중에서도 주택 부문, 그중에서도 프라임 등급을 제외한 일부에 해당했다. 그런데 금세 전체의 문제로 번졌다. 오늘날 가계와 기업, 정부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심각한 부실이 발생하면 관련된 금융기관의 부실, 심하면 정부 재정의 부실로까지 확장되면서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심각한 불황이 생기기 전 아예 모두가 빚을 내지 않기로 합의하면 어떨까? 이 질문에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그게 불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답한다. 일례로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를 예로 생각해보면 아파트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설회사는 은행에서 비용을 대출받아 사용한 뒤, 완공 후 분양해서 갚는다.
만약 대출이라는 제도가 사라진다면, 그래서 모두가 가진 범위에서만 소비해야 한다면 공급과 수요 두 측면에서 모두가 문제가 생긴다. 건설 회사는 아파트 건설을 시작하기 힘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수십 년간 돈을 모으지 않으면 집을 사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빚을 낼 수 없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 대부분은 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제위기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많은 것들을 써먹을 수 있었다. 연쇄적인 파산을 막기 위한 금융기관 구제와 신용 회복, 공격적인 돈 풀기와 금리인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입 협력, 이 모든 것이 대공황이 남긴 유산 덕분에 가능한 처방이었다.
대공황 Great Depression 이란 1929년에 미국에서 기작된 대공황은 말 그대로 '거대한 경기침체' 를 뜻한다. 192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찾아온 세계경제의 짧은 호황기였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 수출로 특수를 누렸던 미국이 가장 큰 호황이었다.
그 시기 미국에서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공업 분야에서 소비가 폭증했고, 그에 발맞춰 공업 생산력이 빠르게 향산됐다. 경제가 어찌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이 시기를 '광란의 20년대 Roaring Twenties' 라고 부를 정도다. 문제는 성장과 소비가 정체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끝날 줄 모르던 소비생활도 결국 무한대는 아니었다. 팔리지 못한 상품의 재고가 쌓여가기 시작했고 기업들의 재정 상태도 눈에 띄게 악화됐다. 그런데도 주식시장만은 상당한 호황을 누렸다. 당시 미국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이유는 사람들의 낙관적 전망과 막대한 빚 때문이었다. '빚투' 라는 말이 있었는데 앞으로 주식 가격이 많이 오를 걸 감안해 당장 빚을 내서 하는 투자하는 말이다. 당시에도 비슷했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직전에 등록된 전체 주식 계좌 중 40%가 신용계좌, 즉 주식 가격의 일부만 내면 모자란 돈은 빌려서 주식을 살 수 있는 계좌였다. 예를 들어 그 계좌에 현금이 25만 원있으면 75만 원은 증권사에 빌려 100만 원짜리 주식을 살 수 있는 식이다. 채무자의 주식 가격이 빌려준 돈의 얼마 이하로 떨어지면 강제로 해당 주식을 시장 가격에 팔아치우고 원금과 이자를 다시 가져간다. 그 이상 손해가 나면 담보에서 회수한다. 이렇게 신용으로 주식을 사면 적은 돈으로 큰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커진다.다음으로는 대공황 당시 미국 주식의 평균가격과 소비자들의 채무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 두 가지 수치가 정비례로 상승하는 모습이다. 주식 가격이 말 그대로 거품과 같은 호황이었다는 뜻이다.
주식시장의 활황을 이끌었던 돈의 상당 부분은 탐욕으로 쌓아올린 엄청난 규모의 '빚' 이었고, 상승세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공포심과 강제 매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역시 대공황도 빚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빚을 못 갚게 되자 차례로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붕괴한 주식시장은 미국 사회 전체에 여파를 몰고 왔다. 수많은 가계와 기업이 파산하고, 전체 은행의 40%에 해당하는 1만 5,000여 개 은행이 문을 닫아야 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집과 직장, 그리고 소중한 예금까지 전부 잃고 길에 나앉는 상황이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은 미국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줄여서 연준의 대처였다. 불황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오히려 인상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가 떨어지면 실질금리가 인상되는 효과가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금리를 올려버린 것이다. 여기서 물가가 떨어지면 실질금리가 인상되는 효과에 대한 예를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1,000달러 를 대출받아 1년 후에 이자 100달러를 더해 갚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곧 디플레이션이 시작됐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더니 -10%까지 이르렀다. 그럼 이 대출자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물가가 10% 하락했다는 것은 곧 돈의 가치가 10%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대출차는 여전히 원금과 이자를 합해 1,100달러를 상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디플레이션 이전 가치로 1,210달러를 상환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부담하는 금리가 10% (100달러) 에서 21% (210달러) 로 증가한 셈이다.
이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낮추기는 커녕 확 올려버린 것이다. 막중해진 빚과 이자의 압박을 버틸 수 없게 된 가계와 기업이 줄지어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는 헤어 나오지 못한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연준에서 금리를 올린 결정에 대해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대처 같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금태환제 라고 한다.
금본위제의 핵심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의 가치를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으로 보장한다' 는 것이다. 이를테면 20달러를 은행에 가져가면 법에 정해진 중량 30그램만큼의 금과 바꿀 수 있었다. 금본위제 경제는 지폐의 가치가 금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화폐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은행에서 금이 빠져나가면 발행할 수 있는 화폐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훨씬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위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하자 행여 금이 고갈될까 초초해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달러화를 은행에 반납하고 금으로 바꾸려 한다. 외국 자본도 달러를 금으로 바꿔 미국 시장에서 줄줄이 빠져나갔다. 이 같은 흐름을 돌리기 위해 연준에서 택한 방법이 바로 금리 인상이었다. 금리를 높이면 빠져나가던 외국 자본이 높은 금리에 매력을 느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조치로 시들시들하던 미국 경제가 완전히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몇 배나 높아져버린 실질금리와 막중한 이자 부담 앞으로 빠르게 파산했다.
결국 1933년 미국은 극심한 불황과 높은 실업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된다. 가치를 금으로 보증하지 않고 달러화를 찍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시기 미국 경제 실업률이 심각할 때는 24%에 이르고 10여 년 동안 10%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평균 실업률이 무려 18.2%였다. 실업률을 측정하는 기준이 달라서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IMF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6~7% 정도였으니 얼마나 끔찍한 수치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 가능한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년 동안 이어진다는 것은 그들뿐 아니라 그들이 부양하는 수천만 명의 가족들이 생계유지에 필요한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가 대공황을 연구한 끝에 경제위기 때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끔씩 깨닫게 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연준의 대처가 대공황 때와 완전히 달라진 것도 바로 그 덕분이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다. 물론 오늘날의 처방에도 나름대로 부작용이 따른다. 우리가 과거의 경제위기를 되새겨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불황의 이유를 제대로 알고, 오늘날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면서 미래에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한국의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1929년 미국 대공황까지 세 번의 금융위기들을 쭉 살펴보았다. 크고 작은 금융위기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 주기로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우리 인간이 변함없이 항상 무엇인가를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친 탐욕으로 경제위기에 치닫는 것도 또 폐허 속에서 더 나은 미래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니까 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고 필자가 말한다.
인간의 탐욕 때문이 아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위기도 있다. 가깝게는 홍수,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또 하나 최근 우리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재난이 있다. 바로 코로나19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끼친 영향들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인들의 삶을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누구도 그렇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완전히 극복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선고일 것 같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인류가 감염병이라는 위기를 완전히 극복한 적은 없었다. 인류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정도의 대유행도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20세기 초에 등장해서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폐인독감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때문에 파괴력이 과소평가되기도 하지만 굉장히 큰 피해를 낳은 '팬데믹' 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의 2%가 넘는 4,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주요 43개국의 국내총생산이 평균 6% 하락했다. 더 무서운 것은 스폐인독감이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 탄생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나치가 유대인 같은 외국인과 소수민족을 향한 독일 군중의 적대감을 이용해 집권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최근 뉴옥 연방준비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에서 스페인독감 사망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외국인을 향한 적대감과 극우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특히 강했다고 한다.
여기서 스폐인 독감이랑 외국인이랑 상관이 없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피폐했다는 뜻이다. 엉뚱한 사람을 미워하고 탓하고 싶어질 만큼 말이다. 이건 독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경험하거나 고통을 받을 때면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 그리고 소중한 직장과 삶의 터전을 정체 모를 감염병 때문에 잃게 된다면 누구라도 원망할 대상을 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럴 때면 우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이 특히 원망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 아닐까?
코로나19유행이 심해질 때도 상당히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영미권 국가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아시아인들을 향한 혐오 범죄가 급증했었다.
美 '엇나간 분노' ··· 아시아인 대상 증오 범죄 77% 폭증
국제사회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 확산하고 있다. 서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에 대한 분노가 아시아계에 대한 배척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뿌리깊은 반 (反) 무슬림 정서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계 시민도 (백인 등과) 동일한 국민이라는 소속감 회복이 필요하다" 고 진단한다. (···)
- 《세계일보》 2022.1.13
스폐인독감이 유행하던 시절 독일 내 군중심리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을 찾아내 응징하고 싶은 심리다. 당대의 경제 상황도 큰 몫했다. 독일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승전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요구해왔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서 석탁이나 철광석 같은 자원 채굴권을 넘겨야 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미국발대공황의 여파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1932년 독일의 실업률이 약 30%였으니 당시 독일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하다. 즉 독일인들은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스페인독감을 거쳐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버티다 폭발한 것이었다. 스폐인독감이 창궐한 지역의 경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병으로 많은 인구가 사망한 탓에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감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소비와 생산이 크게 위축됐다. 한번 뭔진 경제력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고 이들의 삶을 보호해줄 최후의 보루인 정부 보조금마저 감소했다. 그러자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기존 정치 세력을 향한 분노와 불만이 빠르게 커졌다.
평상시라면 소수에 머물렀을 극단주의 정치 세력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까닭도 대중의 분노와 증오가 쌓일대로 쌓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 잃을 것이 없는 빈곤층을 중심으로 이질적 집단에 박탈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나치의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벌인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스폐인독감과 코로나19가 닮은 점은 하나 더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세계 각국이 도시 붕쇄 조치를 시행했다. 스폐인독감 때도 비슷하게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가 있었다. 봉쇄 조치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극단적인 조치다. 사람들은 대면해서 재화를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입을 얻는 경제활동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나 영업 제한 정책은 부분적인 제한이었는데도 자영업자들의 생계와 전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했다. 이런 통제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경제활동이 중단된 가계나 기업은 빚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심하면 파산으로 내몰리게 된다. 감염병 피해를 막기 위해 취한 조치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피해를 낳는 경우다. 스폐인독감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확산하다가 약 2년 후에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19 역시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다. 그런 기미도 조금씩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감염병이 야기한 충격으로 궁핍해진 사람들의 삶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재난을 기회 삼아 자산을 늘리는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이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줄어 빚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빈곤의 양극화가 계속 누적됐다가 더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번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난 위기로부터 배운 교훈들을 되새기며 지금부터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스폐인독감을 이야기한 김에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겠다. 유럽 역사를 공부할 때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흑사병' 이다.
흑사병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감영병이다. 이 병에 감염되면 피부 곳곳이 검게 짓무르는 증상이 나타나서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페스트 pest 라고도 불린다. 14세기 중반에 유행한 질병으로, 구체적인 통계 자료가 없어 피해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지만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됀다.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자 경제활동이 대부분 크게 위축됐고 사회 시스템 역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전쟁' 마저 중단될 정도였다. 흑사병의 충격은 일시에 끝나지 않고 중세 유럽의 경제 구조를 바꿔놓았다. 원래 중세 유럽은 전통적인 농업 사회였다.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노가 주로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후 그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흑사병으로 인해 농사일을 할 농노의 수는 3분의 2로 줄었지만 농경지는 그대로니 예를 들어 원래 땅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100명이었다면, 흑사병 이후에는 똑같은 면적을 67명이 경작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많은 토지가 경작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토지라는 상품의 수요와 공급을 따져보면, 공급에 비해 수요가 확 줄어버린 상황이다.
당시 농노는 영주에게서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고, 그 생산물의 일부를 바쳐야 했다. 이걸 토지 임대에 대한 대가라고 해서 지대 地代 라고 한다. 토지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곧 농노들이 낼 지대가 줄어든다는 뜻이고 이는 농노들의 실질임금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농노는 농사일이라는 노동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농산물이라는 결과물을 얻는다. 그중 일부를 토지 소유주인 영주에게 지대로 지급한다. 농노에게 지대는 곧 비용이고, 이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농노의 이익이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총 이익 = 매출 - 비용, 농노의 이익 = 생산물 - 지대
농노의 수가 줄어서 노동력이 귀해지고, 반대로 지대는 떨어지면서 농노의 이익이 커진 것이다. 흑사병은 인류사에 두고두고 남을 지독한 재난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은 농노들은 사회적 지위와 실질 임금이 높아지는 혜택을 입었다. 또 많은 경작지가 버려지면서 영주의 통제력이 약해진 덕분에 농노는 이동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이전까지는 거주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 영지에 묶여 있던 농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지배 계층 사이에서는 보다 강력한 귀족 가문이 생겨났다. 상당수의 영주가 권력을 잃고 몇몇 집안에 통폐합된 결과다. 말하자면 영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귀족 가문은 이후 유럽에서 절대왕정이 등장하는 데 발판이 되기도 한다. 흑사병 이전까지 유럽 사회는 금욕주의적인 기독교 세계관이 주류였다. 중세 유럽에서 상업이 화려하게 꽃피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기독교 세계관이 상거래 같은 경제활동을 천시했기 때문이다. 상인이 이윤을 극대화한다든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취한다든가 하는 행위는 전부 악으로 치부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다 흑사병이 발생하고 나서 사람들이 느끼게 된 것은 정치나 종교가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위생 관념이나 의학 지식도 거의 없던 시대다 보니 이때 당국이 발표한 내용 중에 굉장히 황당한 것들이 많았다. 일례로 당대 석학자들이 모인 파리의과대학에서 흑사병의 발생 원인을 발표했는데, 내용인 즉 '하늘에 있는 별들이 특정한 구도를 이뤄서 그것이 지구에 나쁜 영향을 미쳤는데, 그때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땅속에 있던 나쁜 기운들이 올라와서 역병이 퍼진 것이다' 라는 것이다. 흑사병이 퍼질수록 기존 사회의 지배층이었던 영주와 교회의 권위는 가파르게 추락했다. 앞에서 사람들의 이주가 전보다 자유로웠고, 또 실질임금도 늘어났다고 해서 사람들은 흑사병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점차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오늘을 즐기자!' 라는 식의 소비와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이후 유럽은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 부흥기인 '르네상스 시대' 로 진입한다. 타락하고 무능한 교회에 반발해 일어난 종교개혁, 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중시한 과학혁명도 비슷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흑사병이 없었다면 적어도 사회 변화의 속도가 상당히 더뎠겠다. 기존 사회·경제 구조를 유지하지 못할 만큼 사람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런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바뀐 우리 삶을 한 번 생각해보자. '비대면 경제' 라는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 경제활동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서서히 진행되던 변화들이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맞아 엄청나게 가속화됐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감염병 대응을 빌미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기도 하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 곳곳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큰 정부'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역사를 통해 경제를 아는 시간이었다. 경제를 알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필자는 말한다.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주어진 환경과 한계를 극복하고 눈부신 문명을 이룩해냈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풍요 속에서도 다가올 불황을 걱정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재난과 위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역시 지나온 과거겠다. '붕괴와 재난에서도 배운다'는 이번 강의의 제목처럼, 인류는 거듭되고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읽어낼 수 있는 답을 과거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렇게 낸 답에 따라 부를 확장하고 때로는 분배함으로써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번영을 추구해온 역사가 곧 경제의 역사다 이렇게 정리를 한다.
02.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한 사람들
경제학의 대가는 귀한 능력들을 겸비해야 한다. 그는 어느 정도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이자, 철학자여야 한다. - 존 메이너스 케인스
#자유방임주의 #사회주의 #케인스주의 #신자유주의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이 탄생했다. 경제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때로는 해결하며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애덤스미스와 고전학파
애덤 스미스
경제에도 자연적인 규칙이 있을 거라 여기고 '보이지 않는 손' 을 주장. 포지티브섬 경제관.
제로섬 | 포지티브섬 |
부의 합은 일정 | 부는 증가할 수 있음 |
고전학파 데이비드 리카도 (자유무역 옹호),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존 스튜어트 밀 (자유주의 설파) 등
마르크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사회문제,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 등 노동자들의 분노를 대변 참고『공산당 선언』
잉여가치론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해 자본주의를 지속
신고전학파
효용가치설
소비자의 효용 중시 → 한계효용 정립
앨프리드 마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 구현.
케인스
대공황 때 공급과잉 발생. 시장이 저절로 균형을 잡는다는 신고전학파 비판 → 시장이 균형을 찾기를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
신자유주의
스태그플레이션
경기가 침체하는데 물가는 상승. 케인스 이론으로 설명 불가능한 상황 → 정부는 경제에 함부로 개입해선 안 되고 시장 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학파 등장
참고)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반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의문 제기.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에 주목.
참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자본주의 자체가 소득 불평등을 심화. 재분배 정책이 필요
챕터 이야기
02장에서는 경제학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다. 살면서 우리가 이름을 자주 듣진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소수 경제학자가 만든 이론을 기초로 운영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시장의 효율성과 그 한계, 정부의 역할, 부의 소득의 불균형까지. 자신이 살던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가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경제학은 정답이 없는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학문인 만큼, 진단과 해법이 학자마다 달랐다. 열띤 논쟁이 벌어진 것도 그 것 때문이다. 이번 2장에서는 경제와 사회를 해석하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전반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학이 학문의 형태로 갖추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최초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책이 출판된 지 약 25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기본적으로 애덤 스미스가 만들어놓은 렌즈를 통해 경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 전에는 경제학이란 것이 없었나?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통치의 기술 정도로 여겨졌을 뿐 독립된 학문으로 영역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상업과 교역이 활발해지고 자본주의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장경제의 규모는 빠르게 커졌다. 애덤 스미스 역시 처음에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 으로 유명하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최소화하고 개인이 경제활동을 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이론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많은 분들이 아래 『국부론』의 유명한 대목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국부론』 중에서
이것만 보면 개인의 이기심만 너무 강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 이기심이 결국 우리 사회에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욕망, 그 욕망을 좇으라고 놔두면 일부로 조장하지 않아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질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시장질서가 이끄는 대로 국가를 운영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균형을 찾게 돼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매우 철학자답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생각에서 사회의 질서가 출발한다고 보았으니 말이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시대적인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앞에 이야기했던 대로 중세 유럽 사회는 금욕적인 윤리관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억눌러왔다. 근데에 접어든 후에도 한 동안은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국가가 민간의 경제활동에 온갖 규제를 가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옭아맸다. 애덤 스미스는 이 모습을 비판적으로 지켜봐왔기에 개인이 욕망을 발휘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자유방임과 시장경제를 주장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당시 유럽에 퍼져 있던 계몽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계몽주의는 한마디로 인간 이성을 중요한 위치에 놓은 사상 흐름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종교보다는 합리성으로 자연을 파악하고 세상의 진리를 찾고자 시도했다. 애덤 스미스는 그 영향을 받아 경제 역시 자연처럼 일정한 질서로 돌아가리라 봤다. 바로 시장질서를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성만큼이나 공감 능력도 강조했다. 타인이 느끼는 행복이나 불행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의 폐해로 귀결되지 않고 조화로운 질서로 연결될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애덤 스미스는 시대를 앞서 나간 경제학자였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경제를 제로섬 zero-sum 으로 이해하던 기존 관념을 비판하고,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경제를 상상했다는 것이다.
포지티브섬은 여러 값을 더했을 때 플러스 값이 나온다는 말이다. 반대로 제로섬이라는 건 합했을 때 제로, '0' 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경제의 세계를 제로섬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전체 부의 크기가 언제나 일정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경제를 제로섬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부를 빼앗는 것 만이 자신의 부를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즉 상대방의 부를 빼앗으면 내 부는 늘어나지만 총합은 그대로니까 제로라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국부를 GDP, 즉 국내총생산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람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규모로 보는 거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 국가가 소유한 금과 은의 총량이 곧 국부의 크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세 후기부터 강력한 왕권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절대왕정체재를 유지하던 유럽 국가들은 금은을 얻기 위해 혈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금과 은이 국제 화폐로 사용되면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은 매장량 자체가 무척 제한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아우르는 장거리 교역이 증가하자 세계 여러 나라가 금과 은을 구하지 못해 더욱 안달을 냈다. 국가가 직접 전쟁이나 식민지 착취를 통해 타국의 귀금속을 빼앗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무역흑자를 위해 소수 기업에 독점 권한을 부여하는 등 자의적인 국가 개입 역시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외국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해적질을 국가에서 공공연히 지원하기도 했다. 국제법이란 것이 없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부' 만 늘리면 된다고 생각한 시절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사상과 관행들을 중상주의 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중상주의 重商主義 란 상업을 중시하는 사상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상업이란 오늘날의 의미가 아닌 '귀금속을 벌어다주는 수단'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적 규제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극복해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금은 같은 귀금속이 곧 국부라는 중상주의적 관념 대신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소비하는 생필품과 편의품의 양' 이 국부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요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진정한 국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족과 상인들이 금고 안에 귀금속을 잔뜩 쌓아두던 풍경은 애덤 스미스가 꿈꾼 부자 나라의 모습이 아니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를 증진하기 위해 전쟁을 하거나 시장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생산조직을 구축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생산된 상품이 개인의 이기심과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교환된다면 자연스럽게 국부가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내용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상상한 포지티브 경제관이다. 총합이 변하지 않는 제로섬과 달리, 포지티브섬 경제는 점점 총합이 늘어나는 '성장형 경제' 를 전제한다. 제러섬 경제처럼 서로 빼앗기고 빼앗는 관계가 아닌, 상부상조하는 경제주체를 상상했다.
당시의 통념이랑 정반대인데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 솔깃한 이야기였다. 특히 상업으로 부와 명성을 빠르게 쌓아가던 신흥 자본가 계급의 이해와 잘 맞아떨어졌다. 대항해시대 이후 장거리 무역이 증가하면서 무역으로 가장 많은 부를 얻은 상인층과 지식인층의 영향력이 사회에서 점점 커졌다. 정부의 구속을 피해 자유로운 무역으로 이익을 키우자고 했던 신흥 자본가 계급이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열렬히 환영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중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옹호하려고 중상주의 경제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이들을 옹호했던 이유는 자본가의 이익이 결국 사회의 전체 이익과 연관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문명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의미하는데, 이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협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었다.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자본가에게 이윤을 가져다주고 자본가는 이 이윤을 다시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쓰면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두 집단 중 하나의 편을 듣 것이 아닌 상부상조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애덤 스미스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수 많은 백성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한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하거나 번영하는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를 단순히 '이기심을 강조한 경제학자', '무조건적인 자유방임주의자' 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소득 불평등, 기업의 독과점, 환경오염 등 자유방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숱하게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에는 자칫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그 이론이 부작용을 낳은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말에는 더 많은 사람이 풍요롭게 살기를 바랐던 한 경제학자의 희망이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더불어 그 희망이 경제학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게 된 이유였다는 것과 더불어 기억했으면 좋겠다.
애덤 스미스 이후 중상주의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후대의 많은 학자가 애덤 스미스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보완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경제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애덤 스미스의 뒤를 이어 자유무역을 옹호했던 데이비드 리카도, 『인구론』 을 저술한 토머스 맬서스, 그리고 자유주의를 설파한 존 스튜어트 밀까지 '고전학파' 로 묶어 부른다.
그런데 현실은 애덤 스미스의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18세기 중엽 시작된 산업혁명은 거대한 도시와 공장뿐만 아니라 수 많은 도시 빈민과 가난한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물론 혜택을 입은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저소득과 빈곤, 열악한 주거 환경, 장시간의 노동과 산업재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감염병 등을 온몸으로 겪었다.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누적된 끝에 19세기에는 온갖 폭동과 시위가 유럽 곳곳 도시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 이 세상에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 마르크스는 워낙 강력한 반체계적 주장을 펼친 인물이라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 강의에서는 마르크스를 향한 비난이나 호응 같은 가치 판단은 유보하고, 한 명의 경제학자로서 가급적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먼저,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더 자세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와 전망이었다. 마르크스는 당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평범하고 가난한 이의 고통에 연민을 느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다르지 않다. 다만, 애덤 스미스가 생산력을 향상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마르크스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높아지는 생산력이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고전학파가 세워놓은 몇 가지 이론을 토대로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시장에서 같은 크기의 가치를 갖는 상품들끼리 교환되고, 이 때 상품의 가격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합당한 정도로 책정된다는 고전학파 전제를 택하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바로 자본가는 어떻게 그렇게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으며, 노동자는 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가? 노동자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를 팔아 임금소득을 얻는 사람이고, 자본가는 그 노동을 사는 사람이다. 고전학차의 이론대로라면 노동도 합당한 값에 거래가 돼야 하고, 그렇다면 노동자도 자본가가 부자가 되는 것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는 그 이유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비대칭한 관계에서 찾았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 에 따르면 한 노동자가 8만큼 노동을 한다면 그중에서 노동자자신의 몫은 3에 국한되고, 나머지 5는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5에 해당하는 노동을 잉여노동이라고 하고, 잉여노동에 의해 생상된 가치를 잉여가치라고 말했다. 잉여가치는 곧 자본가의 이윤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이걸 새로운 사업과 생산수단에 투자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란 노동자가 만든 노동의 결과물 대부분을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제체제였다.
마르크스는 자본가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운명대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잉여가치를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면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낙오되기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속성상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 이론은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본가가 얻는 이윤 역시 단순히 착취로 얻어낸 것이 아닌 사업에 뛰어들기까지 감수한 위험이나 기술적으로 기여한 부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반론 이야기는 뒤에 다시 이야기를 하고 마르크스의 이야기로 다시 이어가서 앞서 애덤 스미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가 문명의 가장 높은 단계였다고 했는데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현재로선 가장 문명화된 사회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했던 고대 노예제나 중세 봉건제 사회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사회라고 했다. 문제라고 여긴 부분은 자본주의하에서 발전의 결실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것이었다. 그 격차에서 오는 분노가 마르크스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게 했는데, 그게 바로 사회주의다. 인류 역사가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한 것 처럼 자본주의 이후 단계가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과거에 그랬듯 자본주의는 최종 단계가 아니라는 논리다. 마르크스가 전망한 미래는 이랬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인력을 대체할 기계가 발전하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 인구가 실업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 생산력은 높아지는 반면 가계의 구매력은 줄어들테니 과잉 생산, 과소 소비로 인한 공황이 주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 이런 경제위기에 더 강력한 자본가가 상대적으로 약한 자본가를 흡수하면서 자본과 부는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자본주의 체제는 한계에 도달하고, 마침내 차별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혁명에 의해 붕괴될 것이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 초기에는 반발이 더욱 심했기 때문에 기계 파괴 운동 같은 일도 일어났다. 시대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은 마르크스의 이론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유럽 사회 곳곳에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정치 세력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1차 세계대전에서 크게 패하고 재정 위기에 봉착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면서 '소비에트 연합' 줄여서 소련이라고 하는 사상 최대의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사회주의 영향력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한때는 전 세계 인구 절반이 마르크스 이론에 기반한 정치 세력의 통치를 받았다. 물론 마르크스와 그의 학파가 만든 이론에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서구 선진국이 끝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자본주의가 진화하면서 사회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 마르크스의 이론의 허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은 지난 백여 년 동안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 중요한 기초를 놓았고, 경제학을 포함해 수 많은 학문, 노동조합, 사회단체, 국가 제도, 예술 등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론의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마르크스가 근대 인류사에서 손꼽히게 중요한 인물임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보완하고 정교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바로 고전학파의 계보를 이은 '신고전학파' 였다. 같은 신고전학파 안에서도 학자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공통이라고 할 만한 특징 위주로 살펴보겠다.
신고전학파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기적 선택이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온다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나아가 사회의 모든 정보가 시장에 즉각 반영되며, 개인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경제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고전학파를 이어 받은 '신' 고전학파는 왜 앞에다가 '신'을 붙였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고전학파와 구분되는 점이 있어서 '신'고전학파라고 했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학파의 관심은 국부의 증진, 즉 성장이었다. 그런데 신고전학파는 자원을 배분하는 문제로 초점을 이동시켰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제한된 소득 내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분석하는 식이다. 생산 영역을 중시한 고전학파와 달리 신고전학파는 소비 영역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마르크스 이론의 주인공이었던 자본가와 노동자는 모두 생산 차원에서 다뤄진다. 애덤 스미스도 생산성의 향상을 강조했다. 반면, 신고전학파는 소비 대상인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 즉 '효용' 을 강조하면서 고전학파와 결정적으로 거리를 둔다.
마르크스는 효용이 아닌 노동이 상품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오래 일할수록 높은 가치의 상품이 나온다고 봤다. 사실 애덤 스미스도 어느 정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걸 노동가치설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상품 가치는 투입된 노동랴옵다 쓰는 사람의 효용에 영향을 받는다는 신고전학파의 효용가치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고전학파는 노동가치설과 효용가치설의 단초를 모두 제공했고,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 학파가, 효용가치설은 신고전학파가 발전시켰다.
그런데 신고전학파에게는 쾌락이 곧 행복이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상이 전재돼 있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만큼 개인의 효용, 즉 쾌락 증대에 관심을 두고 이론을 발전시킨다. 대표적으로 한계효용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앞에서 잠깐 살펴봤는데, 소비가 한 단위씩 늘어날 때마다 효용의 증가 폭이 줄어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었다. 밥을 처음 한술 뜰 때는 만족이 큰데, 갈수록 감소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학자들은 한계효용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교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이를 '한계혁명' 이라고 부른다. '좋은 건 많을 수록 좋다' 혹은 '투입하는 자본이 클수록 효용이 비례해서 커진다' 는 식으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계효용을 받아들이면서 단위마다 편익과 비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체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이는 곧 개인의 효용을 계산하는 다양한 이론과 법칙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설악산 공룡능선을 청소해야 할지 같은 문제처럼 정책 결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신고전학파의 창시자이자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앨프리드 마셜이 바로 수요 공급의 법칙을 이론화한 경제학자다. 마셜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인 개인' 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량이 감소하는 수요곡선과 반대로 가격이 비쌀수록 공급량이 증가하는 공급곡선을 그래프 위에 구현했고, 더 나아가 두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가격이 결정된다는 모델을 만들었다.
경제학에선 아주 중요한 진보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손이라고만 어렴풋이 알려져 있던 시장 원리가 수치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그래프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신고전학파는 자유방임주의를 긍정한 고전학파의 기본 이념을 체계적이고 정교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들은 경제학에 수학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학자의 이미지, 이를테면 복잡한 계산식이나 그래프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경제학자들이 이때 처음 등장했다. 신고전학파는 시장경제를 좋아했다는 점에서 고전학파랑 비슷하다. 그래서 마셜은 마르크스주의자와 자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다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마셜의 경제학을 두고 시장경제의 절대성을 옹호하고 자본가 계급의 입장만 대변하는 학문이라고 비판했었다. 물론 마셜 역시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회주의는 경제를 황폐화시키고 개인적인 삶, 가정 등 가장 아름다운 것까지 파괴한다고 반박했다. 개별 소비자와 기업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의 조화와 균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던 마셜로서는 당연한 반론이었다. 이런 마셜의 적극적인 대응이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신고전학파가 주류 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마셜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마셜은 수요 공급의 법칙 외에도 수많은 경제 개념과 원리를 구체화하며 경제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189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경제학 원론』은 경제학의 지침서가 됐다. 마셜이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취임할 때 '훌륭한 경제학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심장을 가져야 한다' 고 당부한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경제학자가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되 분석은 이성적으로 하라는 말이다. 마셜은 당대의 사회문제, 특히 빈곤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인 학자였다.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경제학자가 되었던 것도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대학 교수 시절에는 실제로 빈민가에 가본 학생만이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마셜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19세기 후반, 세계경제는 급변하고 있었다. 국제 무역량이 크게 늘어 각국의 시장이 긴밀하게 연결됐고, 세계 자본주의 질서가 탄탄히 구축되어갔다. 신고전파 이론이 널리 적용되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대 기업이 등장하고 강력한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적인 팽창 정책을 펴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심각한 경제 공황도 종종 발생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점차 심화하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경제는 20세기 초에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전대마문의 위기에 연이어 직면했다.
무엇보다 신고전학파 학자들의 충격이 컸다. 시장경제의 효능을 지나치게 확신한 탓에, 눈앞에 닥친 시장 붕괴 앞에서 아무런 효과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역사는 자유방임을 지나 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혼합경제로 진입한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1929년, 빠르게 증가하던 성장과 소비가 갑자기 멈추고 대공황이 시작됐다. 실업과 소득 저하로 소비 여력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공급만 넘쳐나는 공급과잉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한 시장질서가 최고라고 믿은 신고전학파의 이론만으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문제였다.
이때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나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인스가 생각한 문제의 시작은 '지나친 저축' 이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이 개인에게는 바람직하다. 그런데 사회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기만 하면 소비와 생산으로 돌아가는 경제에 누수가 생긴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주지 않으니 생산자인 기업이 타격을 입고, 줄줄이 실업 증가,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당연히 신고전학파들은 생각은 했으나 일시적인 문제일 뿐 머지않아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의 자기 조절 기능이 작동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 번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는 회복될 줄 몰랐고 고통받는 사람의 수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케인스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 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많은 사람이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 장기적인 균형과 회복이 무슨 소용이냐면서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언젠가는 회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사람들이 받는 고통은 현실이기에 케인스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케인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찍이 공급과잉을 예상한 학자가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 붕괴를 말했던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시장에서 상품을 빠르게 늘어나는데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당한 탓에 그만큼 임금이 빠르게 늘지 않으니 결국 과잉 생산, 과소 소비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대공황으로 혼란에 빠진 세계의 모습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과 상당히 일치해보였다. 그 덕에 마르크스의 이론이 다시 큰 호응을 얻었다. 덩달아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비판했던 케인스 역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둘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으로 노동계급의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에 한계가 있을 뿐, 자본주의 자체는 고쳐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 케인스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케인스가 자본주의를 보완할 방법으로 주목했던 것은 정부의 개입이었다. 전 세계가 대공황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1936년, 케인스의 대표 저작인 『고용, 화폐, 이자에 관한 일반 이론』 이라는 책에서 위기를 벗어날 해법을 다뤘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책을 쓰면서 경제위기에 대처하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부채를 짊어지더라도 돈을 쓰라는 것이다. 고용이 발생하도록 정부가 사업에 투자한다거나, 다양한 복지 정책으로 취약한 가계와 기업의 소비 활동을 지원하는 것 등이다. 정부 정책을 통해 경기가 좋아지면, 그때 민간으로부터 돈을 회수해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 여러분도 정부가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리 다음 해의 예산을 더 크게 잡는다던가 하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도 다 케인스 경제학에 따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가 이런 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가계, 기업에 이어 정부가 세 번째 경제주체로 등장해 중간자 역할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부터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케인스가 짜놓은 경제 이론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국민 재난지원금' 역시 어느 정도 케인스식 이론에 기초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케인스는 주식 투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예상했겠지만, 케인스의 처방을 통해 194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경제는 황금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다. 미국, 서유럽, 일본 등에서 1인당 실질소득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파르게 상승하며 케인스 경제학도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1970년대 와서 상황이 나빠진다.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원유 공급이 갑자기 줄면서 국제 유가가 빠르게 올라간 '오일쇼크' 때문이다. 그 여파로 원유를 사용하는 전 세계 모든 산업의 비용이 증가하고, 물가 역시 빠르게 상승했다.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가득 끼었다. 그때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던 한국도 높은 유가와 수출시장 침체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경기는 침체하는데 물가는 올라가는 상황,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 이 찾아온 것이다. 인플레이션 inflation 앞에 경기침체를 뜻하는 단어 스태그네이션 stagnation 을 붙여 만든 말이다. 경기가 과열되면서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침체하면 물가가 하락한다는 기존의 경제학 틀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제대로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다. 케인스식 해법대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 재정을 풀면 오히려 물가가 더 올라가버릴 것이 뻔했고 반대로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재정을 하면 경기가 더 후퇴를 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케인스 경제학이 무용지물이 되자, 다시 정부의 개입 대신 자연스러운 시장질서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사조가 등장한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은 케인스식 해법과 정면충돌했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 문제가 당장은 해결되는 듯해도 결국 건전한 회복에 방해가 될 것이라 보았다. 어렵더라도 시장에 맡기고 방임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었다.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학자가 신자유주의를 대표한다. 큰 맥락에서는 고전학파와 신고전학파 이론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까지 근 30여년간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핵심 주장은 이거다. 정부는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유연하게 대처를 못하니, 가능한 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 시장을 자유롭게 두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부의 개입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해 놓은 준칙에 따라 통화량 조절 정도는 해야 한다고 봤다.
신자유주의적 해법만의 영향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위기를 해결했다고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을 보면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 마거릿 대처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영국은 복지 관련 지출을 대폭 삭감했고, 에너지, 통신, 운송 등 주요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했다. 덕분에 기업들의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이 개선되었고 정부의 재정도 나아졌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보호할 사회 안전망을 해체함으로써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도 비슷했다. 각종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 지출을 축소했다. 효과도, 부작용도 영국과 유사했다. 때마침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완전히 세계를 압도한다. 일부 국가는 세계경제의 흐름에 발맞춰 자발적으로 정책 노선을 수정한 반면, 몇몇 국가는 외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반강제로 신자유주의 질서를 수용하게 되었다. 한국은 후자에 가깝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전면 받아들여야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표적인 정책들을 한 번 나열하면 이렇다. 규제 완화, 민영화, 시장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시장자유화, 세금 감면, 복지 축소···
모두가 IMF 가 구제금융을 대가로 우리나라에 요청한 조건들이다.
경향신문 1997.12.4
달라는 대로 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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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일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제 2의 국치일' '경제의 국치일' 이다. 자치능력을 상실한 채 국제통화기금 (IMF) 에 이날 경제 주권을 정식으로 이양, 금융·자본시장의 완전 개방과 대기업 구조 변혁 등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수모를 당한 때문이다. IMF의 '신탁통치' 가 시작된 것이다. (···)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IMF 라는 기관에서 자금을 빌려와 외화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개인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신용이 낮은 자식이 부모에게 돈을 빌릴 때 부모가 조건을 여럿 건다.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 것, 수입의 얼마 이상은 쓰지 말 것 등 등···. IMF가 한국에 요구한 조건들도 마찬가지였다. 명목은 재정 건전성을 갖추고 신용도를 높이라는 것이어지만 지금 보면 유달리 가혹한 요구가 많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심각한 부채 문제에 봉착했던 것은 사실 가계나 정부가 아닌 기업이었다. 특히 정부의 재정 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 초반 정도로 꽤나 건전한 상태였다. 비슷한 시기에 OECD 국가들의 평균 채무 비율이 70%를 넘었으니 우리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다. 지금 와선 오히려 그때 무리하게 재정 긴축 정책을 편 것이 독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부 주도로 민간에 재정을 더 풀었더라면 경제 회복이 더 빨랐을거라고 보는거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렸다' 고 표현할 정도로 돈을 엄청나게 공격적으로 풀었다. IMF 외환위기 때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정책이 서방 국가들의 위기 앞에서는 IMF의 묵인하에 허용된거다.
2010년에 IMF 총재가 직접 과거 우리나라에 요구했던 조건이 가혹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IMF의 구조조정을 지켜본 다른 국가들이 이후 IMF 구제를 피하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30여 년간 세계경제를 주도해온 신자유주의의 입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며 크게 흔들렸다. 그 와중에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금융위기가 이어지고, 부의 양극화 문제가 어느 나라할 것 없이 갈수록 심화되자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2013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라는 화제작을 출간하면서 마르크스 이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다.
앞서 많은 학자가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이 책은 방대한 통계 데이터를 이용해 반박이 어렵도록 설득력을 높였다는 것이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특히 복잡한 수식 대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간단한 수식만을 사용한다.
이 책에서 피케티는 19세기 이래 자본의 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는 사실을 통계 자료로 보여줬다. 그렇게 자본을 통해 얻은 부가 소득을 통해 얻은 부보다 항상 크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계층 간 불평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피케티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문제 때문에 미래가 암울하다고 봤다. 여기서 피케티가 마르크스랑 같다고 생각이 느껴지지만 다른 점도 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경제가 필연적으로 붕괴할 운명이라고 보지 않았다. 적절한 통제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득세, 글로벌 자본세 등의 정책을 국가 및 국제적 차원에서 실시하면 점점 분배가 공평해지고,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경제에서 뻗어나간 신고전학파와 우리 시대 신자유주의 학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케인스 학파 모두 이전 시대 학자들의 연구를 보완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경제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어디까지 통제하고 허용할 것인가' 라는 화두를 가지고 고민해왔다는 점 하나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인류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인류의 삶을 부지런히 쫓으면서 계속 진화하고 있고, 앞으로 쭉 그럴 것이다.
03 다시, 경제의 출발점에서
비랍리성은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경제학의 한계 #경로의존성 #행동경제학
경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도 있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이 경제적 합리성을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 중 하나로서 유연하게 경제학을 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
합리성의 한계
인간은 항상 합리적으로만 행동하지 않음.
경제학의 가정에 어긋나는 사례들
가정 ① 제한된 조건에서 효용을 극대화한다. ↔ 봉사활동, 인간의 선의나 보람.
가정 ② 소비할수록 효용이 증가한다. ↔ 환경문제.
경로의존성
새로운 방식이 마련돼도 자신에게 익숙한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것.
예시) 쿼티 자판기
새로운 경제학
행동경제학
인간의 활동이 합리성보다 경험이나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됨. 기존 경제학에서 예외로 치부하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연구.
챕터 이야기
경제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학문이지만, 그렇다고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엔 경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 이슈까지도 전부 경제학으로 해석하려는 경제 만능주의적 태도로 쓰인 책들이 꽤 많아서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경제가 인간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에는 경제학이 강조하는 가치 이외에도 여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유, 평등, 정의 ··· 이런 가치관들은 경제적 가치와 충돌할 수도 있고, 그럴 때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번 강의에서는 그와 같은 경제학의 한계를 이야기할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다고 가정한다는 예시다. 쥐가 어떤 행동을 하면 먹이를 제공하고, 하지 않으면 계속 굶기는 식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경제적 동기에 따른 쥐의 행동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을 대상으로 비슷한 방식의 실험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실험을 해도 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이 먹이를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할까? 인간은 쥐와 같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므로 인간은 경제적인 동기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경제와 무관한 신념이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쥐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쥐가 인간보다 더 합리적이고 경제적 사고를 하니 우월한 동물일까? 그것에 답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꼭 합리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인간이 먹기를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가상의 청자가 답을 하고 있다. 필자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경제학이 추구하는 합리성만으로는 이 세상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하고 있다. 가상의 먹이 실험을 예로 들었지만, 현실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가령 일제강점기를 예로 들어 일제의 지시에 순응하면 혜택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교육하고 통제했다. 먹이 실험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면 순응하고 부역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선택인가' 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인 혹은 공동체의 행복, 고유한 문화와 전통, 정의와 긍지 등 고려할 가치가 너무 많은데 전부 논외로 하고 합리성 하나만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시각은 굉장히 편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은 유일무이한 정답을 제공해주는 학문이 아니다. 다른 학문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경제학의 전제는 '제한된 조건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효용을 극대화한다' 는 것이다. 그런 원리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에는 경제학적 설명을 제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가까운 예로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은 개인에게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있을까? 자원봉사에 임하는 사람이 스스로 대가를 받지 않기로 했으므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 애매하다. '저 자원봉사는 최저시급 수준의 아르바이트를 세 시간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노동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봉사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나 보람,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감정까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는 어렵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고 함부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 까지 돈으로 따지려고 들면 안된다. 인간의 선의, 희생, 보람처럼 우리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또 하나, 경제학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환경과 생태 문제다. 20세기 중반까지 사람들은 소비를 많이 할수록 효용이 증가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전제가 의문을 사고 있다. 대량생산과 과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한참 겪고 보니, 환경 문제가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쓰레기를 매립할 땅이 없어서 지자체 간에 분쟁이 일어난다는가, 발전소와 공장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미세먼지 때문에 연간 몇만 명의 호흡기 질환자가 발생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이제 익숙하다.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 기후위기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 지구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러한 환경 문제는 기존 경제학의 틀만 가지고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학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이 진단할 수 있는 영역, 합리성과 효율만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나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길게 보면 합리적이지 않아 경제학적 설명이 잘 들어맞지 않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경로의존성이다. 어떤 판단을 할 때 익숙한 경로에 의존하는 경향을 뜻한다. 20미터 정도가 단축된 새로운 길이 뚫렸다고 가정해보자.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약간이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이용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직접 확인해보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꼭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다. 오랫동안 이용해온 길이 이미 익숙해져 버렸기에 굳이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경로의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컴퓨터 키보드의 쿼티 자판이다. Q, W, E, R, T, Y가 있는데 이런 배열로 만들어진 자판을 쿼티 자판이라고 부른다.
타자기 중에서도 구식인 기계식 타자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이 외에도 후보군이 다양했다. 지금의 쿼티 자판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인 자판들이 여럿 출시됐다.
그때만 해도 타자기 자판이 너무 효율적으로 배열되면 오히려 문제가 생겨서 쿼티 자판을 쓰게 된 것이다. 사람이 자판을 누르면 가늘고 긴 금속 막대가 움직여 해당 활자를 찍는 원리였기 때문에, 한 타와 다음 타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짧으면 금속 막데끼리 닿아서 엉겨붙고 말았다. 기계식 타자기의 한계였다. 결국 타자를 약간 더 느리게, 비효율적으로 치도록 쿼티 자판의 배열이 채택된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인간의 경로의존성이 드러난다. 전동 타자기가 개발된 이후 타자를 빨리 쳐도 글씨가 엉겨붙는 문제는 사라졌다. 그럼 이제 빠르게 칠 수 있는 자판을 사용해야 합리적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판 제작자들이 빠르고 효율적인 자판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아도 사람들이 이미 익숙한 쿼티 자판을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자판을 익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초기의 쿼티 자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인간의 비합리성에 주목하는 경제학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예컨대 주식 투자자 중에서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공부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한다든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만 좇는 기준을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단순히 예외 사례로 치부해버리는 이런 행위들에 대해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은 왜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진짜 원인과 원리를 거꾸로 찾아가려고 한다. 실제 인간의 활동이 합리적인 선택보다 경험이나 권위에 의존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행동주의는 원래 심리학에서 사용되던 방법론이었는데, 경제학이 다루는 영역이 워낙 넓어지다 보니 사회학이나 심리학 이론까지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기 위해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경향이 현대 경제학의 일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경제의 세계를 간단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가깝게는 우리 생활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경제 개념을 이해해보았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역사 속에서 어떤 진화를 거듭해가며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는지도 봤다.
그렇지만 이 내용도 경제의 세계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사실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무엇보다 인류의 삶이 역사적으로 대단히 팽창하고 발전해온 만큼, 경제가 다루는 영역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을 읽어서 경제를 다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딱 한 권으로 정리하기에는 경제학이 다루는 지식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전문적인 영역까지는 알 필요는 없지만, 경제의 세계를 심도 깊고 정확하게 이해해 판단을 내리려면 이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알려드릴 세부 분야들은 마치 집을 지을 때 쓰는 기둥과 같다. 어느 한 기둥이 부족하면 다른 기둥이 아무리 튼튼하게 세워져 있더라도 집 전체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기둥들은 제일 먼저 시장과 교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까마득한 옛날에 인간이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주고받으면서부터 본격적인 경제활동이 시작된 것이니 말이다. 물물교환에서 시작된 교역이 점차 어떤 형태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국가 간의 무역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교역의 기본적인 원리와 시사점을 살펴볼 예정이다. 교역이 이루어지는 시장의 원리도 함께 배우며 다른 주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한 밑바탕을 다질 것이다.
그 다음은 금융이다. 실생활과 맞닿아 있어 많은 분이 알고 싶어하는 분야이면서 동시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다. 신용과 금리, 화폐와 환율, 물가와 통화이론, 그 외에도 주식이나 채권, 보험 등 알아야할 내용이 많다. 이번 강의에서도 약간 다루기 했지만, 아직 맛보기에 불과하다. 금융의 세계를 한 차원 깊이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보다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기업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사업의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과 변천사를 살펴볼 것이다.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신가들의 도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혁신이 없었다면 우리 삶은 여전히 500년, 아니 1,000여 년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재정, 세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정부의 역할과 역사적 변천사, 세금과 재정정책을 통한 소득과 부의 재분배까지 다루어보려고 한다.
경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할 겸 기초 강의를 준비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경제가 가까이 있다고 느낀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경제를 더 알고 싶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매일 경제 공부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낀다. 경제는 현실을 다루는 학문이고, 현실은 매일매일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그 사실이 필자에게는 기쁘게 느껴진다. 매일 배우고도 또 배울 것이 남아 있기에 앞으로 남은 강의에도 들려드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준비운동은 이 정도로하고 다음부터는 심화한 경제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미 예고한 것처럼 다음 권에서는 '시장과 교역' 을 주제로 뒤이어 올 모든 내용의 토대가 될 만한 경제 이야기를 전달해드리겠다. 시장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교환이라는 행위가 갖는 경제적 의미와 원리, 특화와 분업이 바꿔놓은 세상의 모습까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과도 직결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유구한 역사, 미중 무역 분쟁과 같은 현안도 빠뜨릴 수 없다.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오늘날 세계를 만들어온 경제의 큰 흐름을 스스로 그려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경제적 관심사
대공황이 진행되던 1937년 미국 캘리포니아 풍경 사진을 보여준다. 두 남자가 짐을 든 채 흙먼지 쌓인 도로를 하염없이 걷고 있다. 도로변 광고판에 '다음엔 기차를 이용하세요. 편안히' 라고 적혀있다. 이런 사람들이 꽤 여럿이었나 보다. 보행자들은 왜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공황 시기에 일자리를 잃은 수 많은 공장 노동자와 농민은 여건이 나은 지역으로 험한 여정을 떠나야만 했다. 이 시기가 가장 절발한 경제 문제는 '실업' 이었다.
다른 시기는 어땠을까?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산업혁명 시대에는 '성장' 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시간이 흐른 18세기 후반, 한계혁명이 일어나 이번에는 '효율' 이 많은 경제학자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대공황을 거치고 20세기 중반이 되자 다시 '성장' 이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같은 개발도상국과 서구 선진국 모두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21세기에는 어떤 경제적 주제가 주목을 받을까? 세계화 혹은 탈세계화, 불평등, 4차 산업혁명, 생태주의 등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또 어떤 경제 문제가 최대 과제로 떠오를지 궁금하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03장의 퀴즈를 풀어볼 수 있다.
https://nantalk.kr/bbs/board.php?bo_table=economics_quiz&wr_id=3
부록 | 용어 해설·찾아보기
| ㄱ |
· 경로의존성
새로운 방식이 등장해도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는 경향성
· 경제 순환 모델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생산을 교환하며 정부가 중간자 역할을 하는 세 주체 간 상호작용을 다룬 모델
· 경제주체
경제적 선택을 하는 주체, 가계, 기업, 정부가 대표적이다.
· 계몽주의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혁하려 한 사상 운동
· 고시환율
외환시장에서 통화가 거래되어 실시간으로 결정되는 환율
· 공급곡선
상품의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공급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곡선
· 공급과잉
소비에 비해 생산이 늘어나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으로 공황의 원인이 된다.
· 공리주의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과 쾌락에 두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사상
· 관세
수입품에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무역 규제 방식 중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 구조조정
기업의 사업구조나 조직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으로 흔히 기술 혁신, 인력 감축 등이 동원된다.
· 국가주도 경제체제
국가의 경제가 시장이 아닌 정부 주도로 움직이는 체제
· 국내총생산 (GDP)
한 나라에서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여 합산한 것
· 국채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
· 금리
원금에 지불되는 기간당 이자를 비율로 표현한 것으로, 이자율이라고도 부른다.
· 금본위제
화폐의 가치를 금의 무게에 비례하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
·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에 설치된 정책기구로 대한민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 기대수익률
보유한 자산을 투자했을 때 기대되는 수익률로, 투자로 얻은 돈을 투자금으로 나눠 100을 곱한 값이다.
· 기본소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해진 기간마다 사회 구성원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소득
· 기준금리
중앙은행에서 결정하는 금리로 한 나라의 금리를 대표하는 금리, 정책금리라고도 불린다.
· 기축통화
국제간 결제나 금융 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
· 기회비용
어떤 선택을 내림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효용 혹은 가치로, 실제로 지출하지 않았다 해도 비용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포함된다.
| ㄴ |
· 노동가치설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량이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
· 농노
중세시대 봉건 영주에게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생산물의 일부를 바치던 피지배 계층
| ㄷ |
· 대공황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경제 공황
· 대항해시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서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신항로가 개척되며 전 세계가 연결된 시기
· 독과점
한 기업 또는 소수의 기업이 상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시장 형태
· 디폴트
채무자가 채무에 대한 이자 또는 원리금 지급이 불가능한 상태
· 디플레이션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
| ㅁ |
· 모라토리움
국가가 채무 상환을 연기 또는 유예하는 일
| ㅂ |
· 배당
주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분에 따라 기업이 거둔 이익을 나눠주는 일
· 불황
경기가 침체되면서 사람들의 소비가 위축되고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
| ㅅ |
· 사회 안전망
실업, 재해, 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 사회주의
자본과 토지 등 생산수단을 사회가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상
· 상품시장
재화나 서비스 등의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
· 생산요소시장
상품 생산을 위한 노동, 토지, 자본 등의 생산 요소가 거래되는 시장
· 서브프라임 모기지
주택담보대출 상품 중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상품
· 수요 공급의 법칙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른 가격의 결정과 변화를 설명한 법칙.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 정해지며,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 수요곡선
상품의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수요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곡선
· 수출경쟁력
국제 무역시장에서 수출 상품이 다른 나라의 상품과 경쟁할 수 있는 정도
· 스태그플레이션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경기불황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
· 시가총액
한 회사 또는 주식시장 전체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로, 특정한 회사의 시가총액은 발행 주식 수와 현재 가격을 곱해 구할 수 있다.
· 시장
거래를 원하는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상품을 교환하는 장소
· 시장경제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경쟁, 시장 원리를 통해 자원을 분배하는 경제체제.
· 시중은행
예금과 대출 업무를 담당하되 화폐 발행권이 없는 영리 목적의 은행. 상업은행이라고도 부른다.
· 신자유주의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사상운동으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며 자유로운 시장질서를 옹호한다.
· 실질임금
물가상승을 고려해 실질적인 구매력으로 평가한 임금
| ㅇ |
· 액면가
증권이 발생되는 시점에서 해당 증권에 표시된 발행 가격
·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OMC)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 연방준비제도 (Fed)
미국 중앙은행 제도로, 산하 기관으로 12개 지역 연방은행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을 두고 있다.
·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핵심 기관으로 12개 연방은행을 관리하고 연방준비제도를 운영한다.
· 영업이익
총매출에서 세금, 급여, 관리비 등 추가적인 비용을 뺀 값
· 오일쇼크
1970년대 이후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전 세계에서 유가가 상승한 사건
· 외환보유액
한 나라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해놓은 외화 자금
· 인플레이션
물가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현상
· 잉여가치론
자본가는 노동자가 잉여노동해 만들어낸 잉여가치를 착취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
| ㅈ |
· 자본주의
개인의 사적 재산 소유를 바탕으로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체제
· 자유무역
관세 등의 규제 없이 다른 나라와 자유롭게 무역하는 것
· 자유방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최소화하고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을 해야 한다는 사상
· 자유주의
봉건제의 구속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
· 재분배
세금이나 복지정책을 통해 분배상의 격차를 줄이는 일
· 저당권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을 경우 담보로 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
· 제로섬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총합이 0이 되는 상황으로, 한 참가자의 이익이 다른 참가자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
· 주식
기업 투자에 따른 기업에 대한 권리이자 지분
· 주주
주식을 소유한 사람으로, 주식 지분에 따라 해당 기업의 자본과 이익,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를 소유한다.
· 중상주의
16세기 이후 절대주의 국가의 특징을 이룬 사상 흐름으로, 한 나라의 부는 그 나라가 갖고 있는 화폐 또는 귀금속의 양에 비례한다고 본 것이 특징이다.
· 주식회사
주식 발행을 통해 여러 사람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그에 비례하여 이익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
· 중앙은행
한 나라 통화제도의 중심이 되는 은행으로, 화폐 발행권을 가지며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 지대
토지를 비롯해 공급이 고정된 생산요소를 사용한 데에 대한 대가
| ㅊ |
· 채권
빚이 기록된 문서나 계약서로 소유권 거래가 가능하다.
| ㅌ |
· 투매
자산 가치 하락이 예상될 때 손해를 무릅쓰고 팔아 넘기는 행위
| ㅍ |
· 파생상품
예금, 주식, 채권 등의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금융상품
· 포지티브섬
여러 참가자들이 가진 값의 총합이 0보다 큰 상황
| ㅎ |
· 한계비용
어떤 상품의 생산량을 한 단위 늘렸을 때 증가하는 비용
· 한계편익
어떤 상품의 소비량을 한 단위 늘렸을 때 증가하는 편익
· 한계효용
어떤 상품의 소비량을 한 단위 늘렸을 때 증가하는 효용
· 행동경제학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전제를 비판하며 등장한 경제학의 한 분야로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 호황
경제가 성장하며 경제활동이 활발한 시기
· 혼합경제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정부의 개입을 용인하는 경제체제
· 환율
한 나라의 화폐가 다른 나라의 화폐로 교환되는 비율
· 회사채
기업이 사업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발행한 채권
· 효용
어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 효용가치설
상품의 가치가 소비자의 주관적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
※ 난처한 출판사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경제 공부를 위해 자체적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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