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I 자본주의 경제, 개인의 선택을 좌우하다
1990년대 어느 사업가의 이야기
◆ 그림에서 읽는 채권의 유래
01 자본주의의 꽃, 주식에 대하여
02 경제, 빚과 이자의 세계
03 주머니 사정을 바꾸는 환율가 물가
04 에필로그 - 중산 씨의 안타까운 결말
◆ 미지근한 경제가 제일 좋다?
◆ 그림에서 읽는 채권의 유래
아래 포스터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에 미국의 《뉴옥이브닝포스트》에 실린 광고다. 포스터 속 인물은 미국을 의인화한 엉클 샘이다. 한 손에는 '전시 채권 (Liberty Bond)' 을 쥐고 있고 다른 손에는 '프러시아 (Prussia)' 라고 새겨진 족쇄를 들고 있다. 이 포스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포스터 아래쪽에 '본드? 어떤 것? (Bonds-Which?)' 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것이 힌트다, 본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구속' 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채권' 이라는 뜻이다. 포스터에서 엉클 샘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을 구입해 달라고 청하면서, 그렇지않으면 미국이 프러시아 (오늘날의 독일) 에 예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채권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bond' 는 '묶는다' 는 뜻의 'bind' 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빚' 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지, 과거 사람들이 빚지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채권을 비롯해 주식, 이자, 물가 등 경제의 기본 주제들에 함께 이야기해볼 것이다.
필기노트
01. 자본주의의 꽃, 주식에 대하여
10월은 주식투자에 특히 위험한 달 중 하나다. 다른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 마크 트웨인
#주식 #주식시장 #주주 #배당 #시가총액
주식은 투자자가 기업에 대해 갖는 권리. 기업가치가 오르내리면 주식 가격도 크게 변동할 수 있다. 주식은 원래 삶의 불안정성을 줄이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중산 베이커리의 탄생
① 1990년대 경제 호황기, 김중산 씨가 제빵 회사를 창업. 회사는 2억 원어치 주식 (액면가 1만원 X 2만주) 발행.
주식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거나 사업으로 발생한 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이자 그 증서.
액면가
발생되는 시점에 증권에 표시된 가격.
주주
투자나 거래를 통해 주식을 소유한 사람.
② 중산 씨는 돈만 씨에게 추가로 2억 원의 투자 유치. 매출 30억 원, 영업이익 5억 원 달성
매출
기업이 사업을 해서 벌어들이는 돈.
영업이익
총매출에서 기타 비용들을 제하고 남은 이익
③ 5억 원을 돈만 씨와 중산 씨 두 사람이 반씩 배당.
배당
회사의 이익금을 주주에게 나눠주는 일.
④ 돈만 씨는 자신이 가진 주식을 25억 원에 투자회사에 팖.
기업의 가치, 시가총액
시가총액
주식 1주당 거래 가격x총 발행 주식 수로 주식시장에서 평가하는 회사의 가치. 기업이 성장하면서 시가총액도 커짐.
주식의 본질
주식 = stock, stock = 그루터기, 저장품
과거 인류가 토기에 식량을 저장해 생활의 불안정성을 줄였듯, 주식도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임.
챕터 이야기
우리는 아직도 경제 용어 자체가 난해하고 현실과 괴리있다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불편해하고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경제활동을 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경제적 사고를 통해서 선택을 한다. 이처럼 경제 용어를 일상 속에서 자주 듣는데 왜 불편해 할까? 그 용어의 의미가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그 예를 주식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다.
주식이란 한자어로 그루 주株 자와 법 식式 자를 쓴다. 이 표현은 주식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톡 stock' 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stock' 에는 여러 으미가 있다. 그 중에는 그루터기와 저장품이라는 뜻도 있다. 그루터기는 나무나 곡식을 베고 남은 밑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루터기에서 자라난 가지를 베어다가 겨울을 보낼 땔감으로 저장했기 때문에 저장품이라는 의미까지 생겼다. 거기서 확장해 주식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서구 문물을 열성적으로 흡수하던 일본 학자들이 그루터기라는 뜻을 반영해 그루 주자가 들어간 주식 株式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복잡한 여정을 거쳐 만들어낸 단어인 만큼 그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공감을 해주고 있다.
주식의 사전적 정의는 '기업 투자에 따른 권리이자 지분'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식회사라는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냥 설명하면 딱딱하니 가상으로 만든 1994년 김중산씨의 이야기로 주식회사라는 개념을 알아보자.
1990년대 초반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호황기라고 불리는 시기다. 호황이란 문자 그대로 상황이 좋다. 즉, 경기가 좋다는 뜻이다. 가계와 기업에 돈이 활발히 돌고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구인난이 당연할 만큼 일자리가 넘쳐나는 상태, 동시에 사람들의 소득수준과 소비 욕구가 높아지면서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을 종합해 '경기가 좋다'고 표현한다.
가상의 인물인 김중산씨는 당시 서울 강남 지역에 아파트를 가지고 큰 부자는 아니어도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지금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부자라고 보지만, 중산 씨는 그렇지 않고 이 당시만 해도 강남에는 신흥 중산층이 밀집해서 살고 있었다. 수십 년간 보험회사를 성실하게 다니며 아파트 대출금을 다 갚은 중산 씨는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중산씨의 마지막 도전은 바로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이다. 직장인이던 시절, 바쁜 일상 때문에 밥보다 빵을 즐겨 먹던 중산씨는 자신 뿐 아니라 한국인의 식문화 자체가 점점 서구식으로 변해갈거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렇게 보다 맛있는맛있는 빵을 만들어 팔면 인기를 끌거라는 확신을 갖고 차린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은 바로 '중산 베이커리'다. 사업을 하려면 돈 들어갈 곳이 많고 일할 사람도 뽑아야 하고 제빵 설비도 구입하고 매장도 갖춰야 하는 돈은 다 중산 씨의 돈에서 나와서 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 돈을 중산 씨는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2억 원을 대출받아 투자했다. 이 때 2억은 '김중산' 이라는 개인에게서 '중산 베이커리' 라는 기업을 소유로 넘어가게 된다. 이 돈을 밑천 삼아 직원도 고용하고 사무실 월세도 내며 한동안 기업을 운영할 것이다. 여기서 중산 씨가 기업에 돈을을 투자한 대가로 갖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빵을 팔아 나오는 이익이다. '투자' 란 결국 미래의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현재 가진 자원을 투입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돈의 소유권이 회사로 넘어간 만큼, 이익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음을 증명할 수단이 필요하다. 투자금을 보전해야 하니 회사가 잘 운영되는지 관리·감독할 권한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운영 방향을 결정하거나 사업으로 발생한 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이자 그 증서를 주식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주식을 한 주만 사도 삼성전자에 대한 권리를 휘두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삼성전자의 운영 방향도 결정할 수 있을까? 그 말은 맞지만 삼성전자 주식은 2022년 기준으로 총 60억 주 정도가 발행돼 있으니 삼성전자 주식 한 주를 사면 지분도 60억 분의 1만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사의 운영 방향을 결정에 영향력은 끼칠 수 없다.
중산 베이커리로 돌아오자면 중산 씨는 중산 베이커리에 2억 원을 투자하고 대가로 주식 2억 원어치를 받았다. 여기서 이해하기 쉽게 중산 베이커리에서 발행한 액면가 1만원 짜리 주식 2만 주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액면가란 주식 같은 증권이 발행될 때, 발행하는 그 시점에 표시된 발행가격을 의미한다. 중산 베이커리처럼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을 주식회사라고 한다. 주식회사는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은 대가로 주식을 발행한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발행한다. 이렇게 발행된 주식을 소유한 사람이 주식의 주인, 즉 주주다.
중산 씨가 중산 베이커리를 차리면서 사무실도 마련하고 직원도 고용하다 보니 돈이 금방 바닥났다. 이 사업이 이어지려면 추가로 큰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중산 씨가 고민 끝에 제삼자에게 기업의 지분을 주고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중산씨는 자신과 같은 아파트에 살던 재력가 '박돈만' 씨를 찾아가서 자신의 창업 아이템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2억 원의 투자를 요청했다. 돈만 씨는 돈은 많은데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끝에 중산 씨의 비전과 열정에 매력을 느껴 투자를 하게 된다. 여기서 돈만 씨가 중산씨와 같은 조건으로 회사에 2억 원을 투자한다면 돈만 씨는 주식 몇 주를 갖게 되는 것일까? 중산 씨에게 발행했던 것처럼 액면가 1만 원짜리 주식 2만주를 돈만 씨에게 발행을 해주었다. 돈만 씨의 투자금 2억 원은 중산 베이커리의 운영 자금이 되었다. 이제 중산 씨와 돈만 씨가 가진 주식 수는 각 각 2만 주로 서로 같아졌다. 지분율로 따지자면 50대 50으로, 두 사람이 중산 베이커리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공동 주주가 된 것이다. 여기서 중산 씨가 회사를 차렸는데 뒤늦게 투자한 돈으로 공동 주주가 되었다니 불합리하게 느꼈을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사업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거나 중산 베이커리가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었다면 더 비싼 값에 주식을 발행했을 것이다. 그건 협의하기 나름이지만 지금 사업에 당장 추가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회사 대표인 중산 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지분 협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중산 베이커리는 서울 압구정동에 첫 가게를 내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당시 1990년 한국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어 중 하나가 '오렌지족'이다. 강남에 사는 부자 부모를 두고 화려한 소비 생활을 하는 20대 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압구정동이었다.
중산 베이커리는 대표상품으로 소보로빵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반 소보로 빵이 아닌 고물이 아낌없이 묻어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빵으로 유행에 민감한 20대 소비자들 사이로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중산 베이커리는 몇 달 만에 압구정동의 '핫플레이스' 가 된다. 빵이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 건 물론이고 빵을 사려고 한 시간씩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사업 수완이 좋았던 돈만씨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도록 중산 씨를 설득했고 명동, 신촌, 여의도 등 서울 번화가마다 중산 베이커리 직영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중산 베이커리는 빵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이렇게 기업이 사업으로 거둬들이는 돈을 경제 용어로 매출이라고 한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 덕에 2년 뒤 중산 베이커리의 연간 매출액은 30억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연간 매출액을 보고 사업을 하는데 다양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매달 지출해야 하는 월세, 전기료, 수도료, 빵을 만들기 위한 재료비, 매장 직원들의 월급으로 나갈 인건비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매출에서 생산비 (다양한 비용) 을 제하고 나면 진짜 이익이라고 불리는 영업이익이 남는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영업이익 = 매출 - 생산비' 라고 할 수 있다. 연간 매출액이 30억 원이어도 생산비가 크면 영업이익은 1원도 못 내고 매달 적자만 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면 사업이 잘 된다고 볼 수 없다.
상장사 1000곳 중 19% "매출은 늘었지만 적자·영업이익은 감소"
- 《KBS NEWS》 2019.6.26
그래서 이런 기사가 나갔던 것이다. 다행이 중산 베이커리는 괜찮은 편이었다. 순이익이 5억 원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남은 이익금은 사업에 다시 활용할 수 있고, 주식을 가진 주주들에게 지분대로 나눠줄 수 있다. 그 중에서 이익금을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을 배당이라고 한다. 중산 베이커리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이익금 5억원을 전부 배당을 한다면 중산 씨와 돈만씨는 배당금으로 2억 5,000만 원을 가져가면 된다. 배당금은 법적으로 금융 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에 실제로 세금이 상당히 부과되지만 여기서 무시를 하고 설명을 한다. 이렇게 중산 베이커리의 사업이 지금처럼 유지가 된다면, 해마다 2억 5,000만 원의 이익금을 배당받을 수 있다.
돈만 씨는 1년에 2억 5,000만 원이니 10년만 있으면 25억원이라는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워 자신이 가진 주식 전부를 모 투자회사에 25억원에 팔았다. 중산 베이커리 주식 2만 주의 소유권이 돈만 씨에서 해당 투자회사로 넘어갔다.
여기서 25억 원에 산 회사는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일까? 그것을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며 중산 베이커리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고, 해마다 5억 원이라는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알짜 회사라고 생각을 해 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서 승승장구를 하면 10년 안에 25억 원이 아닌 수백억 원을 회수하는 훌륭한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가총액이라는 단어를 설명한다. 시가총액이란 회사의 현재 가치가 얼마인지 보여주는 '시가' 를 뜻한다. 횟집에 가서 메뉴판을 보면 해산물의 가격이 시가로 표기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날마다 잡히는 어획량에 따라 해산물의 가격이 예민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시가총액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주식 1주당 거래 가격 x 총 발행 주식 수' 로 시가총액을 계산하는데, 1주당 거래 가격이 시시각각 변하므로 시가총액도 변한다.
기업의 총 주식가치인 시가총액이 클수록 주식시장에서 평가하는 그 회사의 가치 역시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지금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과 미국 애플의 시가 총액은 날마다 조단위로 변한다.
여기서 중산 베이커리 시가총액을 한 번 계산을 해보자. 돈만 씨가 처음 중산 베이커리에 투자했을 때 2억 원을 투자하고 주식 2만 주를 받았으니, 주식 1주당 거래 가격이 1만원인 셈이다. 그리고 발행된 주식 수는 중산씨와 돈만 씨의 것을 합쳐서 총 4만 주였다. 이것을 계산하면 '1만원 x 4만 주 = 4억 원' 이 당시 중산베이커리의 시가총액이다. 그럼 돈만 씨가 자신의 지분을 매각한 시점에 시가 총액은 얼마일까? 4억 원이던 시가총액이 50억 원까지 뛰었다. 중산씨는 아직까지 회사 지분의 절반인 2만 주를 갖고 있으니 25억 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한 셈이다. 사업이 잘 되면 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의 시가총액과 주식가치가 뛰어오른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방탄' 으로 대박 친 OO 인베스트먼트, 내달 코스닥 상장
(···) OO 인베스트먼트는 방탄소년단이 연습생이던 2011년 3개 펀드에 걸쳐 40억 원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으며, 7년만인 올해 4월에는 보유 지분을 모두 넷마블에 넘기면서 1,080억원을 받았다.
- 《연합뉴스》 2018.6.22
이 기사를 보면 방탄소년단이 아직 연습생이었던 2011년 한 투자 회사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에 40억 원을 투자하고, 그 대가로 받은 지분을 7년 뒤 게임 기업인 '넷마블' 에 1,080억 원을 받고 팔았다고 쓰여져 있다. 7년 만에 투자한 원금의 27배를 벌어들인 셈이다. 7년 동안 방탄소년단이 세계에서 활약하며 어마어마한 이익을 벌어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실패했다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망해버렸다면 이익은 커녕 원금 40억 원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날려버렸을 것이다.
2018년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시가총액을 8,000억 원으로 책정이 되어 이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2020년 10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주식시장에 상장됐을 때 시가총액은 무려 4조 8,000억 원이었다. 넷마블이 빅히트 주식을 사들인 후에도 기업의가치가 무려 6배 가량 올랐다. 이 같이 기업이 잘 돼서 주식이 오르기만 하면 좋지만, 사업이 실패하거나 회사가 망하면 투자 원금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악의 경우 아무런 가치도 없는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식이 고위험 투자 상품으로 분류가 된다.
주식 가격, 주가는 기업에 대한 평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기업이 성장해 장차 이익이 커질 거라고 판단되면 그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려는 매수세가 늘어난다. 시장 참여자들이 웃돈을 주며 경쟁적으로 거래하다 보면 주가도 자연스럽게 오른다. 반면 회사의 전망이 밝지 않을 때는 현재보다 떨어지기 전에 주식을 팔아버리려는 매도세가 커진다. 그 결과는 급격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심리 변화까지 작용하면서 주식 가격에 심한 거품이 끼거나 비정상적으로 폭락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수시로 변하는 주가를 보면 기본적으로 기업가치를 반영하여 움직이기에 기업의 운명과 산업 전반의 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주가는 오늘날 금융 시장의 주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민감하게 변동되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여기서 필자는 주식을 꼭 하라 하지마라 그런 조언보다는 주식의 의미를 고민해보라는 시간으로 박물관에 보이는 토기 그림을 보여주며 주식의 다른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주식을 뜻하는 영어 ' stock' 에는 또 다른 의미인 저장품, 비축품이라는 의미가 있다. 원시시대에서의 삶에서 안정적인 거주지나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모든 식량을 사냥과 채취로만 획득했던 날을 떠올려보자. 원시시대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날 큰 메머드 한 마리를 잡았는데, 모두가 배 터지도록 먹고도 고기가 많이 남았다. 이 남은 고기를 어떻게 할까? 저장을 해야 하는데 토기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그 당연한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음식을 방치해두면 들짐승의 끊임없는 공격 대상이 되고 음식이 상해버리는 날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때까지도 인류는 당장 오늘 먹을 식량만 구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비효율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여유로울 때 저장하고, 부족할 때 저장했던 것을 활용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토기의 등장으로 인류의 위험하고 불활실한 삶이 변했다. 토기에 저장된 식량을 이용하면 먹을 게 부족한 시기를 한결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남은 식량은 다른 종족과 교환하거나 필요한 이들에게 빌려줄 수도 있었다. 토기 덕분에 인류는 불규칙한 자연환경과 그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여기서 토기와 주식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주식도 원시인들이 토기 안에 현재의 식량을 넣어 미래의 식량을 기약했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주식을 통해 현재의 투자로 미래의 수익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다. 단기 시세차익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때문에 본질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식이라는 용어 자체에 미래를 대비한다는 맥락이 담겨있다. 이처럼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환경속에서 보다 나은 삶과 환경을 쫓아온 인류의 욕망, 거기에서부터 경제활동이 모두 출발했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식도 위험을 줄이고 안정을 추구해온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탄생한 수단임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말로 끝맺음을 맺는다.
02. 경제, 빚과 이자의 세계
한 사람의 부채는 곧 다른 사람의 자산이다. - 폴 크루그먼
#빚 #금리 #채권 #기대수익률 #국채
채권은 일종의 대출 계약서인 동시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기업이나 국가는 채권을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얻는다. 발행주체의 신용에 따라 채권 가격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중산베이커리 채권
중산 베이커리는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발행.
채권
빚이 기록된 문서나 계약서로 그 자체를 사고팔 수 있음. 발행일, 상환일, 이자율 등이 적혀있음.
이자의 세계
중산 베이커리는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발행.
기준금리
중앙은행에서 정책적인 목적을 가지고 결정한 금리.
① 기준금리가 낮으면, 투자와 대출이 늘어나고 경기가 활성화됨.
→ 물가 상승률 증가.
② 기준금리가 높으면, 이자 부담이 커짐.
→ 물가 상승률 하락.
채권은 어떻게 거래되나
중산 베이커리는 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을 발행.
기업의 신용이 높아지면 채권의 기대수익률이 자연스럽게 하락하고, 반대로 신용이 낮아지면 기대수익률이 증가.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짐.
나라도 채권을 발행한다
국채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구분됨. 대부분 국가가 예산의 일부로 국채로 충당.
국채도 일반 채권처럼 투자 가능.
예시) 제정 러시아 국채를 매입해 6,000%의 수익률을 올린 앙드레 코스톨라니.
챕터 이야기
02에서는 채권이란 단어를 설명한다. 01에서 중산베이커리의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 01 마지막에서 돈만 씨가 자기 지분을 투자회사에 팔았다는 얘기에서 끝이 났었다. 투자 회사는 거액을 들여 주식을 산 만큼 최대한 빨리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싶어했다. 그래서 회사는 중산 씨에게 대형 제빵 공장을 만들어 빵을 전국에 판매할 것을 제안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형 제빵 공장을 세우기 위해 10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기로 한다.
채권이란 한자로 풀면 빚 채 債 와 문서 권 券 으로, '빚이 기록된 문서나 계약서' 라는 뜻이다. 누가 '채권을 발행했다' 고 하면, '빌리는 돈에 대해 언제, 얼마의 이자를 더해 갚겠다' 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해 돈을 빌려주는 곳에 건네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채권이 권리나 권한이라는 뜻과는 다르다. 한자어에는 동음이의어가 많기에 혼동할 수 있다. 하지만 채권자나 채권, 추심 같은 같은 단어를 쓸 때는 권리나 권한에 쓰는 권리 권 權 자를 쓴다. 그러나 채권이라는 독립적인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문서 권 자를 쓴다. 이 문서의 소유권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하다. 여기서 나오는 가상의 청자가 문서의 소유권이 거래된다는 말이 이해가 안가서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예시를 들어서 설명한다. 그 예시로 A라는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B가 샀다. 혹은 바꿔말하면 B가 A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A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받은 상황으로도 말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하게 돈이 필요해진 B가 이 채권을 C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러면 이제 채권의 소유주는 자동으로 C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 A 기업은 이제 B가 아닌 채권의 소유자인 C에게 약속된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한다. 이렇듯 C도 D라는 사람에게 이 채권을 팔 수도 있다. 일반적인 대출 계약서와 달리 채권은 채권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자산이다. 빚의 내용을 기록한 증서의 소유권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가 된다. 실물 채권 없이 설명이 어려워 과거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행했던 채권을 보여주며 예로 들어 설명을 한다.
실제 채권을 보니 수표 등 모두 증거가 되는 문서, 증권의 일종이라 생긴 것이 비슷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행했던 채권 중간 쯤 위치하며 상단쪽에 '금 일십억 원 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채권 한 장 당 10억 원을 받고 발행했다는 뜻으로 액면가 10억 원 짜리 채권이다. 발행자가 근로복지공단이니 처음에 이 채권을 구입한 사람은 돈 10억 원을 공단에 지불했을 것이다. 채권의 왼쪽 위에 작은 글씨로 발행일과 상환일, 이자율이 나와 있다. 발행일은 1998년 6월 29일, 상환일은 2003년 6월 29일, 이자율은 연 7.5% 로 발행일과 상환일이 5년 차이라 발행 후 5년 안에 원금까지 전부 갚아야 하는 5년 만기 채권이다. 거기에 이자율이 연 7.5%라고 나와 있으니 1년마다 원금 10억 원에 이자 7.5%가 붙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찍힌 빨간 도장이 있는데 PAID 라는 도장이 있다. PAID 는 지불됨을 뜻한다. 처음 약속한 원금과 이자가 다 지급돼서 채권의 권리가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표시다. 이렇게 표시를 안하면 부당한 거래에 악용될 수 있기에 도장을 찍어서 소멸이 되었다는 뜻으로 찍는다. 요즘에는 실물 증서보다 조작이 어려운 전자 증서로 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도장이 없을 수 있다.
여기서 중산베이커리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했다. 중간 위쪽에는 '중산베이커리 제1회 채권' 이라고 적혀 있고 '금 일백만 원' 이라고 적혀있다. 왼쪽에는 '발행일 : 1995.05.01 상환일 : 1996.05.01 이자율 : 연20%' 라고 써 있다. 이자율이 연 20이니 1년 뒤에는 원금과 이자까지 해서 총 120만원을 갚아야 한다. 이 돈은 이 채권을 소유한 소유자에게 돈을 갚아야 한다. '해당 채권의 소유자' 에게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발행된 채권 10억 원어치는 여러 투자자에게 인기리에 판매되었고, 거래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여러 투자자에게 인기리에 판매가 되어 중산 베이커리는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무사히 조달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온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기준 금리가 연 10~ 12%에 육박했다고 나온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호황기였기에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8~10%를 오가던 시절이어서 은행 금리보다 낮은 이율의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안전하게 은행에만 저축을 해도 연간 12%의 이자를 얻을 수 있을텐데 불안정하고 위험한 중소기업의 채권을 구매하려 들겠는가. 당연히 은행보다 높은 이자율을 보장해줘야 그 채권을 구매할 이유가 생기기에 이자율이 이렇게 높은 것이었다.
여기서 기준금리를 알려준다. 금리는 곧 이자율을 뜻한다. 금리, 이자율, 이율 다 같은 말이다. 기준금리란 각 나라의 최고 금융기관인 중앙은행에서 결정한 금리를 말한다. 국가 정책을 실현하려고 하는 목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정책금리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매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거쳐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미국은 중앙은행 역할은 하는 연방준비제도 (Fed) 에서 연 8회 개최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FOMC) 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그래서 매번 금리를 정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쏟아진다.
"Fed 3월 금리 인상 확률 56%"
- 《한국경제》 2022.1.2
美 FOMC 눈앞··· '금리 인상 시기' 에 세계증시 촉각
-《문화일보》 2021.12.13
간단하게 정리하면 각 나라의 정부가 자국의 상황에 맞게 안정적으로 경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결정한 정책적인 금리다. 여기서 가상의 필자가 더 쉽게 이야기 해달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기준이 되는 금리라고 한다.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맡길 때 적용받는 금리는 모두 기준금리를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은행이 정한 기준금리가 0%이면 기준금리가 낮기에 시중은행들도 민간에 굉장히 낮은 금리로 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금리가 낮을 때 저축을 해봤자 이자가 낮으니 사람들은 저축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서 주식을 하든 창업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투자나 소비 같은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경기가 좋아진다. 돈에 '빚'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니 누군가에게 빌려서 쓴 돈은 누군가에게 재산이 될 수도 있고 투자 자금이 되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다시 투입될 수 있다. 하지만 유통되는 돈의 양이 늘어나는 일과 별개로 자산이나 상품은 한정돼 있으니 자연스럽게 물가가 오른다. 즉 금리를 낮추면 사람들이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지만 풀린 돈으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가 오른다고 하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이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라서 수입이 일정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상품 가격이 비싸진다는 뜻이니. 많은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질수록 사회질서도 어지러워지고 불만이나 갈등이 자주 발생하고 정치적인 불안정성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정부는 자연스럽게 물가 상승을 저지할 필요를 느끼고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단 중 하나로 기준금리를 올린다.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예로 들었던 기준금리 0%대였던 시절 시중은행에서 돈 1억 원을 연이율 2%로 대출했던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대출금 1억원에 대한 이자는 1년에 200만원, 한 달에 약 17만원 정도일 것이다. 이자만 갚으면서 사업하는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 2%, 3% 이렇게 금리가 높아지더니 1년 뒤에는 기준금리가 연 8%가 됐을 때 중앙은행을 따라 시중은행의 금리도 엄청나게 올랐을 것이다. 시중은행은 10% 금리가 되었다고 가정을 하면 연 200만원이던 이자가 갑자기 연 1,000만 원까지 올라버린다. 한 달에 83만 원이 넘는 이자를 갚아야한다. 이 사람은 처음에 갚았던 1억 원을 무조건 갚으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져서 빚을 갚으려고 한다. 시중에 풀려 있던 돈이 은행으로, 또 중앙은행으로 돌아간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물가가 안정된다. 정리를 하면 정부는 물가를 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조절한다. 경기침체가 우려가 될 때 기준금리를 낮춰서 경기가 활기를 띠게하고, 물가가 너무 높아지면 기준금리를 높여 물가 상승률을 낮춘다. 물론 이렇게 기준금리가 실제로 결정되는 원리는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가령 대출이 너무 빨리 증가해서 속도를 조절하려고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본을 붙잡아두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 있고 다양한 이유로 기준금리가 인상된다. 하나의 핵심포인트는 각 정부가 자국의 안정적인 경제 운영을 위해 조절하는 금리가 곧 기준금리라는 것이다.
다시 채권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중산베이커리가 처음 발행한 채권은 100만원 채권이다. 이 채권을 100장 산 사람이 A 가 처음 샀다고 가정해본다. 총 1억 원어치를 산 것이다. 그런데 이 베이커리의 사업이 잘되니 이 채권을 웃돈 주고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사람을 B라고 하고 B는 1억 500만 원을 주고 A에게서 중산 베이커리의 채권 100장을 전부 구입한다. 여기서 기대수익률이라는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기대수익률은 말 그대로 투자를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을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식에서 계산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처음 1억 원에 채권을 구매했던 A 의 기대수익률을 구해보자
채권 발행 당시 약속된 연이율과 같다. A는 바로 이 20% 의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채권을 구입했던 것이다.
이제 B의 입장에서는 1억 500만 원에 채권을 구입했지만 채권에서 약속한 내용은 안 바뀐다. 그러니 B는 1년 뒤 만기일에 중산 베이커리에서 1억 2,000만 원을 받는다. 1억 500만 원을 투자해서 1억 2,000만 원을 받는 것이니 B의 기대수익률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략 14.3% 가 나온다. 처음 A가 채권을 구입했을 때 기대수익률 20% 에서 14.3% 로 낮아졌다. 채권이 실제 보장하는 이자율이 낮아진 것이 아닌 채권의 거래 가격이 비싸져서 나타난 결과다. 그러면 여기서 B는 이 채권을 웃돈까지 주면서 산 것일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14.3% 의 기대수익률도 은행에 저금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12%대 이자율보다 높기 때문이다. 500만 원 정도의 웃돈을 주더라도 수익률을 고려하면 채권을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산 것이다. 물론 A도 불확실한 미래에 받을 수 있는 2,000만 원의 이자보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500만 원의 이익이 낫다고 판단하여 B에게 팔았던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더 나아가 B보다 많은 웃돈을 주고 중산 베이커리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 나올까? 기준금리가 더 내려가서 은행 이자가 12%보다 낮아지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14.3%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굳이 웃돈을 주고 이 채권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은행에 넣어두는데 비해 기대할 수 있는 차익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산 베이커리는 채권을 발행해서 확보한 자금으로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전국 대도시에는 중산 베이커리 지점들이 세워졌고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빵들은 매대에 놓이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제 중산 씨는 해외 수출까지 결심하고 추가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또 다시 채권을 발행했다. 이번 채권의 이율은 연 15%로 했다. 15%여도 채권은 완판이 됐다. 먼저 발행된 채권의 기대수익률이 14.3%로 낮아졌기에 이자율을 낮아졌기에 이자율이 낮아진 것이다. B가 웃돈까지 주며 중산 베이커리 채권을 사려고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채권을 사려고 경쟁했고 그 결과 채권 가격이 오르고 기대수익률은 떨어진 것이다. 발행 당시 이자율만 놓고 보면 이자율이 낮아진 것 같지만 실제로 기존 채권이 채권시장에서 14.3%의 이율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보다 살짝 높은 15%의 수익을 약속하는 채권을 추가 발행해도 수요가 있는 것이다. 은행 이자보다 더 나은 투자 대상을 찾는 이들에게 15% 이율의 새로운 채권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중산 베이커리는 쓸데없이 더 많은 이자를 약속해가며 채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14.3%이상 이율만 보장해주면 채권을 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시장에서 밝혀졌으니 15% 이율로 채권을 발행해 충분한 자금을 손에 넣었다. 중산베이커리 채권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그렇지 우리 일상에서도 거래를 통해 가격이 조정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하루에 열 컬레의 구두를 만드는 기술자가 있는데 이 기술자가 만드는 구두가 훌륭한 품질에 비해 너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구두의 생산량은 한정돼 있는데 구두를 탐내는 사람이 많다면 누군가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할 것이다. 같은 현상으로 인기 브랜드의 한정판 제품도 10만 원에 출시 됐다가 인터넷에서 20만 원, 30만 원에 거래되는 현상이 있다. 너무 저렴하게 책정된 가격을 시장을 통해 소비자 스스로 조정하는 것이다. 10만원에 출시된 구두인 줄 뻔히 알지만 30만 원을 내더라도 그 구두를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구두 기술자는 '아, 내일부터 구두는 30만 원에 팔아도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서 구두의 가격은 오르는 것이다.
중산 베이커리 채권의 이율 15%로 내려간 것도 같은 원리다. 다른 점이라면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닌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질적인 수익률에 맞게 연이율을 낮춰서 발행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채권의 인기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중산 베이커리가 승승장구하면 좋겠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곧 중산 베이커리의 소보로빵과 비슷한 고급 빵 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고 경쟁이 심해지자 고급 빵 공급량은 늘어났는데 판매량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빵의 재고가 점점 쌓여갔다. 중산 베이커리는 이 빵들이 상해서 버리느니 가격을 낮춰서 판매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을 해서 소보로빵을 비롯해 모든 빵의 가격을 10% 할인하는 파격적인 판매 전략을 펼쳤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으로 중산 베이커리 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업체들이 전부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너도나도 손님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경쟁적으로 할인한 결과 빵 가격이 전체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중산 베이커리는 처음부터 번화가에서 한 시간씩 줄서야 사 먹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빵이어서 유명해진 것인데 공격적으로 할인 정책을 펼치자 흔하고 저렴한 빵을 파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겨서 하루아침에 소비자들이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그로 인해 재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외부 투자자들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특히 1년 뒤에 원금과 이자를 받아야 하는 채권자들, 예를 들어 A로 부터 채권을 구입한 B 같은 경우 걱정이 날로 커져갔다. 중산 베이커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자 B는 이자는 커녕 원금까지 통째로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민 끝에 어느 날 결심을 했다. 1,000만 원을 손해보더라도 채권을 9,500만 원에 팔아버리자고. 더 안타까운 상황은 중산 베이커리 채권은 시장에서 이미 장단 9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가격이 떨어졌다. 채권 소유자들은 나날이 떨어지는 가격을 보며 불안을 넘어서 공포를 느꼈기에 '내일은 더 낮은 가격이 될테니 오늘 당장 팔아버리자', '계속 가지고 있다가 진짜 휴지 조각이 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경쟁적으로 팔려고 하다 보니 가격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시장에서의 거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손해를 무릅쓰고 자산을 싼값에 팔아버리는 행위를 투매라고 한다. '던져버리듯' 팔아넘기는 것이다. 공포에 사로잡힌 B 역시 며칠을 전전긍긍하다가 C에게 채권을 전부 7,000만 원에 판매하고 만다. B는 은행 이자보다 조금 더 높은 이율을 기대했을 뿐인데 큰 손해를 보았다. B에게 채권을 산 C는 무슨 생각으로 B에게 채권을 샀을까? C는 중산 베이커리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샀다. 그러면 C의 기대수익률은 얼마가 될까?
대략 71.4%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채권시장에서는 기업이 위기를 겪을 때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 가까운 사례를 하나 이야기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던 2020년 3월 즈음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항공사인 OO 항공에서 2018년 8월에 발행한 2년 만기 채권을, 2020년 3월에 어느 개인 투자자가 1,000만 원어치를 구입했다는 내용이다. ( 이 사례는 온라인에서 채권을 거래한 내역 일부를 재구성했다.) 일반 기업이 발행한 채권은 보통 발행가 장단 1만원이다. 이 투자자는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던 OO 항공 채권을 기존 소유자에게서 주당 8,500원에 구입한 것이다. 발행가가 1만원이었던 채권의 가격이 8,500원까지 떨어졌다는 건 당시 OO항공의 재정 위기와 채권자들의 우려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자를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채권을 내다 팔았을 채권자의 심정은 'OO항공이 망할지도 몰라 그러니 내 투자 원금을 전부 다 날릴 지도 몰라' 하고 생각해서 팔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OO항공은 망하지 않고 덕분에 이 채권을 주당 8.500원에 구입했던 사람은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만기 시 12,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원금 대비 수익률 20%에 육박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나도 채권에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앞에 소개한 수익 사례들 모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투자다. 고위험 고수익 이라는 말이 있다. 높은 기대수익률에는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른다는 말이다. 냉철한 계산과 분석 없이 덥석 투자를 하게 되면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중산 베이커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중산 베이커리 채권이 헐값에 거래가 되면서 채권의 수익률이 71%로 올라갔지만 중산 베이커리가 현재의 자금난을 극복하려고 추가로 채권을 발행한다고 가정해보면 현재 시장의 기대수익률인 71%보다 더 높은 이율의 채권을 발행해야 팔리는 상황이 온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71% 보다 높은 이율의 채권을 발행한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고 사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위기는 중산 베이커리 같은 기업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도 똑같이 겪을 수 있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며 성실하게 신용점수를 올린 개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사람은 누구나 아는 대형 은행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저 사람은 빚을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되는 사람이야' 라는 판단 때문에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는 '공급' 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용점수, 즉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은 어떠한가? 제2금융권, 그마저도 안 되면 사금융까지 가게 되고 무시무시하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한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금리의 대출이라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대출을 받기 전보다 더 큰 빚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빚 앞에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똑같은 입장이다. 빌린 이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신용이 금리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채권 가격도 발행자의 신용에 따라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채권은 발행자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지표다. 비단 개인, 기업 뿐만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표현하면 세계 각국의 정부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개인과 기업 뿐 아니라 국가도 채권을 발행할까 의문이 들 것이다. 그것에 대답은 국가도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현대 경제의 세 주인공을 소개할 때 정부도 가계, 기업과 마찬가지로 빚을 진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국가도 빚을 질 때 발행하는 채권을 국채라고 한다. 중산 베이커리처럼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을 회사채라고 부른다. 일반인이 국채를 사고 팔 일은 거의 없어서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정부는 해마다 필요한 국가 예산의 일부를 국채를 발행해 얻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일단 예산을 쓰고 난 후에 세금을 거둬 그 세금으로 국채를 갚는 것이다. 당연히 개인이나 기업처럼 국가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채가 늘어나고 신용이 나빠지면 국채를 발행하기 어려워진다.
내년 예산 556조, 8.5% 증가... 90조 적자 국채 발행
- 《부산일보》2020.9.1
적자 국채라는 말은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부족한 세금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경우를 말한다.즉, 정부가 90조 상당의 국채를 발행해 증가한 얘산을 충당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국채도 다른 채권과 마찬가지로 투자 목적으로 거래된다. 국채 투자와 관련해 채권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라는 유명한 투자자의 이야기다. 코스톨라니는 과거 제정 러시아에서 발행한 채권을 사들여 엄청나게 큰돈을 벌었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련이 들어서기 이전에 발행했던 채권에 투자해 돈을 벌인 것이다. 오래된 채권으로 돈을 벌여들였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지식이 약간 필요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황제, 즉 차르 통치하의 제정 러시아는 엄청난 액수의 국채를 발행했다. 이 국채들은 프랑스나 영국 등에서 사주었다. 그러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소련을 수립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과거 러시아 정부가 진 채무를 변제하지 않겠다는 법안에 서명했다. '우리 소련은 과거 황제가 진 빚을 갚지 않겠다.' 라고 일방적으로 공표했다. 채무 불이행, 즉 디폴트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하면 그 국가의 신용도는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지니까 마이다. 해외 자산이 묶이는 것은 물론 앞으로 이 국가에 돈을 빌려주려고 하는 나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련은 애초에 기존 자본주의 질서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나라였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가장 큰 피해자는 제정 러시아의 채권을 구입해 가지고 있던 채권자들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이 채권은 골동품 내지는 기념품 취급을 받으며 세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코스톨라니는 그렇게 버려진 채권을 사 모았다. 계기는 1985년에 있었던 미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이었다. 두 국가의 정상이 만나 대담하는 모습을 지켜본 코스톨라니는 머지않아 미국과 소련 사이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예측했다. '소련이 해체되면 소련의 핵심이었던 러시아도 다시 개별 국가의 운명을 걷게 되겠군. 러시아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정상적인 경제교류를 하려면 일단 제정 러시아 시절에 졌던 채무부터 해결할 수 밖에 없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오늘날 대부분 국가는 수시로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예산을 충당한다. 국채를 발행하고 꾸준히 거래하려면 정부의 신용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비록 100년 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상환되지 않은 수십 조 원 규모의 제정 러시아 채권이 세상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새로 국채를 발행한다면 누가 흔쾌히 돈을 빌려줄려고 할까? 그래서 일단 예전의 빚이라도 갚으면서 국가 신용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개인이라고 치면 가지고 있는 빚부터 성실하게 갚아야 신용이 올라가는 원리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길로 코스톨라니는 골동품 시장에서 제정 러시아 채권을 마구 사들였다. 구매 가격은 발행 가격의 1% 수준인 5프랑에 샀다. 존재하지도 않은 제정 러시아 정부에게서 그 돈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헐값에 팔린 것이다.
정상회담으로부터 6년이 흐른 1991년, 소련이 뭔지고 등장한 러시아 정부는 정상적인 재정 운용을 위해 국채를 발행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에 기존 제정 러시아 채권을 1매당 300프랑씩 보상해주겠다고 발표한다. 발행가가 500프랑이었으니 실은 이자는 커녕 원금도 안되는 금액이었지만 채권 1매당 5프랑에 구입했던 코스톨라니는 무려 6.00% 라는 비현실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만약 코스톨라니가 제정 러시아 국채 1억 원어치를 샀다면 60억을 받게 된 셈이다.
이렇게 비슷한 사례는 많다. 또 다른 사례들로는 과거 중국이 청나라 시절,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이 있었다. 100년 넘게 상환되지 않은 이 채권은 여전히 수집가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또, 프랑스의 BNP 파리바 은행에서는 미상환된 북한 채권에 대한 권리를 모아 금융상품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북한 채권의 경우 실제 거래가 거의 불가능한 특수채권이라 금융 전문지 《IFR》을 통해 가끔 '팔고 싶은 가격' 이 소개가 되는데 평소에는 발행가 1달러의 1%인 1센트 정도로 취급되다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남북 관계가 좋아지던 시기에는 가격이 약 26센트로 치솟았다.
이렇듯 돈이라는 것은 이익에 따라 예민하게 움직이는지 잘 보여준다. 물론 돈에는 의지가 없지만 그 돈을 움직이는 것은 어디까지 인간의 욕망이다. 투자를 포함한 대부분 경제활동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위험과 기회는 항상 공존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03 주머니 사정을 바꾸는 환율가 물가
인플레이션은 입법 없이 부과할 수 있는 조세다. - 밀턴 프리드먼
#환율 #무역 #외환보유액 #자본주의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1990년대 한국 경제는 큰 활기를 띠었지만, 그 이면에 환율로 인한 무역적자라는 문제가 축적되고 있었다. 줄어드는 외환보유액은 호황과 인플레이션에 가려 해결되지 못하고 점점 커져갔다.
국가의 신용
환율
서로 다른 화폐 간의 교환비율.
화폐 가치는 그 나라의 신용을 보여줌.
무역과 환율의 관계
한국은 원재료를 수입해 완제품으로 가공한 뒤 수출하는 제조업 중심 국가. 일정 규모의 달러화가 항상 필요.
외환보유액
나라가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비축해놓은 외화자금의 규모
환율이 1달러당 800원에서 700원으로 변하면,
① 달러와 교환하는데 필요한 원화가 줄어드니까 밀 수입업자는 이득.
② 외국에 전과 같은 값으로 팔아도 환전하다 이익이 줄어드니까 수출업자는 손해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높이는 환율 방어가 1990년대 무역적자를 가져옴
물가가 오르내리면
.
인플레이션
통화량의 증가로 상품과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 자본주의에서는 통화량이 항상 증가할 수밖에 없음
인플레이션으로 어떤 상품의 가격이 크게 인상되면 상대적으로 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음
예시) 강남 아파트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부채 부담이 줄어듬.
디플레이션
통화량의 증가로 상품과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 경제가 안정적일 때는 거의 일어나지 않음. 경제위기 시에 주로 발생.
챕터 이야기
03장에서는 1990년대 한국 경제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외환 이야기를 짧게 소개한다. 여기서 환율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03장을 시작하고 있다. 환율이란 서로 다른 화폐 간의 교환 비율을 의미한다. 환율이 결정되는 곳은 외환을 거래하는 외환시장이다. 그런데 외환을 결정하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고 은행이 가진 외환의 규모와 거래량에 따라 환율이 자동으로 정해진다. 외화가 많이 들어오면 외화가 원화에 비해 저렴해지고, 반대로 외화가 밖으로 많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비싸진다. 그래서 환율은 수시로 변한다. 은행에 갔을 때 나라별 환율 전광판을 본 적이 있지 않는가? 그 전광판에 보이는 것이 바로 외환시장에서 거래되어 실시간으로 결정되는 고시환율이다. 일반 개인이나 기업은 그렇게 고시되는 환율에 따라 은행에서 수수료를 주고 환전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D화를 사용하는 나라가 경제위기에 처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 나라는 재정이 고갈돼 그동안 발행한 국채를 갚지 못하겠다고 디폴트를 선언했다. 현재로서는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외화도, 경쟁력 있는 산업도 없어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면 장차 D화의 가치는 어떻게 바뀔까? 그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대부분 화폐는 발행한 나랑 안에서 쓰이지만, 국제적으로는 각 국가의 신용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채권 비슷한 역할을 한다. 회사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듯, 국가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재정적자가 심화되고 경기가 침체된 상황이라도 정부는 어째됐든 활동을 해야 한다. 쓸 돈은 많은데 빌려올 수도 없다면 다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돈을 찍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 돈은 금이나 은처럼 그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량이 늘어난 만큼 D화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화폐 가치는 사실 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만으로도 떨어진다. 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히 예상이 되는 돈을 갖고 싶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때 외환시장에서 D화의 수요와 공급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도 수요는 줄고 공급만 늘 것 같은 예감이 든다. D화를 다른 신회도 높은 국가의 외화, 혹은 작고 가볍지만 가치는 높은 귀금속과 바꾸려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환율의 등락은 국가의 경제력이나 신용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나라 한국 경제는 무역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내 경제를 이해하려면 환율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달러당 1,000원과 1,300원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런데 중산 씨가 막 회사를 차린 1994년 달러 환율은 1달러당 750~800원 사이였다. 지금에 비교하면 정확히 똑같은 1달러를 얻는데 필요한 원화가 훨씬 적었다. 당시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지금보다 40% 높았다. 반대로 달러는 그만큼 저렴했던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던 중에 돈이 필요해서 원화 100만 원을 환전한다고 가정을 해보면 지금이라면 800달러 밖에 못 받지만 1994년에는 대략 1,300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똑같은 액수의 원화로도 1994년에는 훨씬 더 비싸고 많은 외국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비싼 원화 가격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특히 무역에선 그렇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은 원자재를 수입한 뒤,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해 먹고 사는 전형적인 제조업 국가였다. 1만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원유 등의 원자재를 수입한다. 그걸 재료 삼아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 자동차를 만든다. 3만 달러를 받고 해외에 그 자동차를 수출한다. 남은 2달러로는 또다시 국내에서 필요한 원료와 에너지를 수입해서 강철이나 반도체, 자동차 등을 만든다. 어떻게 보면 개인이 장사하는 과정이랑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역에는 반드시 달러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의 달러는 국제무역이나 금융거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화폐다. 거래의 기초가 된다고 해서 기축통화라고도 한다. 해외 어느 나라를 여행한다고 해도 달러화는 가장 낮은 수수료로 환전 가능하다. 다른 화폐에 비해 달러화의 지위가 확고하고 또 쓰임이 많은 만큼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제조업과 무역이 핵심인 경제 특성상 우리나라는 일정 수준의 달러화가 꼭 필요하다. 이 '일정 수준의 달러' 를 가늠할 때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 외환보유액이다.
10월 외환보유액 4,692억 달러 또 '사상 최대'
(···)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1년 10월 외환보유액' 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4,692억 1,000만 달러로 한 달 사이 52억 4,000만 달러 늘었다.
- 《조선비즈》 2021.11.3.
대체로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 좋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그 국가의 대외적인 신용도가 높다고 보면 된다. 외환보유액은 '나라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해놓은 외화자금의 규모' 를 의미한다. 달러화뿐 아니라 엔화나 유로화 등 외환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통화, 혹은 외화로 표시되는 모든 금융 자산이 집계된다.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아지면 관리하는 비용이 늘어나지만,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발행하는 문제와 비교하면 사소한 부분이니 여기서는 넘어간다. 무역에서 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하면 외환보유액도 점점 줄어든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한국의 무역수지는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단 한 해를 제외하고 계속 적자 상태였다. IMF 때는 상당히 특이한 상황이었다. 원래 달러화가 외국으로 계속 빠져나가면 국내에 달러화가 부족해지고 원화가 상대적으로 많아지니 원화 가치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당시 몇 년 동안이나 무역적자가 이어졌기에 정상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졌어야 했지만 1997년 초반까지도 환율은 달러당 750원에서 800원 사이로 원화 강세가 지속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고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환율을 방어했다' 고 표현하는데 지금은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해 달러화를 팔고 원화를 사들인 것이다.
그 결과 무역은 지속적으로 적자인데 원화 가치는 강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원자재나 원유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수출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 중산 베이커리로 돌아오자면 환율이 1달러 당 800원이던 시점에 주안 베이커리에서는 빵의 원재료인 외국산 밀가루 한 포대를 10만 원에 구입할 수 이었다. 그런데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1달러당 700원으로 환율이 떨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오른 만큼 달러화를 내고 밀을 수입하던 회사는 저렴한 값으로 수입이 가능해졌다. 같은 달러화를 구하는데 더 적은 원화만이 필요했던 상황이니까 말이다. 원재료인 밀이 저렴하게 수입되니, 국내에서 유통되는 밀의 가격도 전체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원가가 떨어진 만큼 수입사는 제분업체에 밀을 저렴하게 팔 테고 밀가루를 사서 빵을 만드는 중산 베이커리의 생산비용도 덩달아 절감될 것이다. 전에는 10만 원을 줘야 했던 밀가루 한 포대가 이제는 8만 원대로 떨어졌으니까 전과 같은 가격으로 빵을 팔아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원재료가 저렴하게 수입된 덕분에 관련된 사람이 연달아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완제품인 빵을 해외에 수출할 때는 높은 원화 가치가 오히려 문제가 된다. 국내의 경쟁과열을 극복하기 위해 중산 베이커리는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는데 중산 베이커리의 대표 상품인 소보로빵의 국내 판매가격은 2,000원이었다. 현실에서는 관세나 유통비용 등도 더해지겠지만, 여기서는 판매가격만 보도록 한다.
1달러당 환율이 800원인 시점에 중산 베이커리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이익을 기대하려면 해외 수입상에게 소보로빵 한 개당 약 2.5달러는 받아야 한다. '2.5x800 = 2,000원' 이 되려면 말이다. 빵을 수출하고 받은 돈이 2.5 달러이기에 달러화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으니 다시 원화로 환전해야 하는데, 환율이 700원인 상황에서 환전하려면 2,000원이 아닌 1,750원을 받게 된다. 판매가격은 똑같이 2.5달러인데 환율이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수출이익이 쪼그라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전처럼 2,000원을 받으려면 2.5달러가 아닌 2.85달러로 값을 올려서 수출해야 한다. 반면 중산 베이커리에서 빵을 수입하는 외국 수입상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그전까지 2.5달러면 충분했던 소보로빵을 사는데 2.85달러를 줘야 한다면 부담감이 커질 것이다. 표면상 0.35달러가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제품을 수입하려면 예전보다 14%나 더 비싸게 사야 한다. 한두 개 수입하는 것도 아닌데 가격이 올라가면 부담이 되니 수입상 중 일부는 아예 다른 제품을 찾게 될 것이다. 수입상 말고 중산 베이커리 입장에서는 가격을 올린 것도 아닌데, 환율이 떨어진 것만으로도 빵을 수출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기에 중산 베이커리는 두 가지 선택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번째 선택은 이윤의 감소를 받아들이고 판매가격을 외국 시세에 맞춰 유지하던지, 두 번째 선택은 판매량 감소를 각오하고 판매가격을 올리는 선택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하는데 수출하는 입장인 중산 베이커리 입장에서는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 낮게 유지된 환율은 일시적으로 국내 시장의 성장과 활기를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 주요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원화 강세 상황에서 외국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구매력이 증가한 반면, 무역적자는 지속되어 외화보유액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었다. 이후에 올 거대한 파국을 암시하는 신호가 조끔씩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 신호들은 고성장 시대의 인플레이션과 호황기의 풍요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란 단어는 경제 관련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용어다. 인플레이션 Inflation 이란 '통화량의 증가로 인해 상품과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 을 의미한다. 간단히 물가상승이라고 이해해도 되는데 그 본질은 통화량,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신문기사를 하나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한다.
연합뉴스 1990.4.19.
물가, 올라도 너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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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인 S상사에 근무하고 있는 OOO 씨 (33)는 한 달 용돈이 15만 원으로 월급 60만원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 돈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우선 점심 때 인근 식당에서 웬만한 음식을 사 먹으려면 작년 이맘때는 1,000원으로도 족했으나 이제는 2,000원짜리도 부실한 편에 속하며 다방의 커피값도 작년 봄 600~800원 수준에서 지금은 최고 1,500원까지 껑충 치솟았다. (···)
이 신문기사를 접하면서 지난 30년간 물가가 꾸준히 올랐다는 걸 반증해준다. 이렇게 물가가 오르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천재지변이나 장마가 길어지거나 날이 갑자기 추워지는 이유로 물가가 오르는 건 공급 감소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다. 피해가 복구되고 농산물 공급이 정상화되면 가격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장기적인 물가 상승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다.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지난 30여 년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돈의 양, 돈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가 그렇게 설계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여기서 자본주의 의 단어를 설명해준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사적 재산 소유를 바탕으로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체제' 를 의미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이익을 얻기 위한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체제' 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현실에서 살기에 굳이 따로 배운 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익이란 굉장히 이상한 특성을 갖고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어던 마을에 A와 B라는 딱 두 사람만 살고 있고, 이 둘이 처음에 같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두 사람은 서로의 삶에 필수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돈과 상품을 주고받으며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몇 년간 A가 B에게 계속 이익을 봤다. 이 경우 B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A와 B가 처음 같은 돈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A가 이익을 계속 봤다면 돈을 계속 벌었다는 뜻이고 그럼 B는 돈이 줄어든 상황이지 않을까? 돈의 총량이 한정되어 있을 때, A가 돈을 번다는 것은 B가 돈을 잃는다는 뜻이다. A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B는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A의 돈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본 B는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을 두 배로 올렸다. 경제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A는 비싼 돈을 주고 B의 상품을 구입한다. 그렇게 해서 A가 쌓아뒀던 돈이 다시 B에게로 돌아간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협상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둘은 서로 이익도 손해도 보지 않는, 지속 가능한 상품 가격을 찾아 거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B의 금고에 갑자기 새로운 돈이 생긴다. 그것도 날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A는 생각했다. 'B에게 돈이 더 생겼으니 내 상품의 가격을 조금 더 올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런데 이 생각을 B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A가 가격을 올린다고? 결국 자기가 이익을 더 보겠다는거네. 손해 보고는 못 살지' 결국 B도 A만큼 자기 상품 가격을 올려버린다. B의 금고에 날마다 새 돈이 생겨나는 족족 A가 가격을 올리고 B도 가격을 올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게 물가가 오른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화폐의 총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물가가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A와 B의 사례처럼,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팽창할 동력을 얻는 경제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은 계속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은 계속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는 말은 단순히 지폐 뭉치나 동전을 찍어내는 것이 아닌 대출을 해준다는 말이다. 중앙은행은 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새롭게 만들어내 빌려줄 수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주기만 하면 세상에 없던 돈이 '짠' 하고 탄생된다. 당연히 뭉칫돈을 직접 건네지는 않고 전산상으로만 기록되는 과정이다. 그 다음엔 시중은행이 그 돈을 일반 기업이나 가계에 다시 대출해줌으로써 세상에 돈을 유통시킨다. 중앙은행이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A와 B 사례에서 B가 돈이 늘어남으로 A와 B가 만드는 상품의 가격이 계단식으로 상승했던 것을 보면 같은 원리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총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우리 세상의 물가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급하게 상승했다. 30년 전에 비해 다섯배나 올라버린 물가는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평범한 소비자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이 그 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존재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중산씨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중산씨가 중산 베이커리라는 사업을 하기 전에 목돈을 마련하려고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는가? 당시 중산 씨가 소유한 아파트의 거래 가격은 2억 5,000만 원 정도였고, 담보의 가치를 인정해준 은행으로부터 대출한 금액은 2억이다. 그런데 중산 씨가 사업을 열심히 하는 동안 경제 호황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덕분에 중산 씨의 아파트도 2년 만에 3억 5,000만 원까지 올랐다. 이자를 제외하면 중산 씨가 가진 부동산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5,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훌쩍 뛰어넘어버린 셈이다. 다음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20여 년 전 신문기사인데 2007년 7월에 입주가 시작된 서울 강남의 대치 OO 아파트에 대한 기사다. 입주 당시에는 2억 2,000만 원으로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20년 정도 장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을 것이다.
한국경제 2000.5.2
입주 예정 아파트 '대치 OOO'
편익 시설 풍부한 강남 노른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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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평이 2억 2,000만 ~ 2억 4억 3,000만 ~ 4억 9,000만 원에 5,000만 원, 32평이 3억 3,000 거래된다. (···)
만 ~ 3억 6,000만 원, 37평형이
중산 씨의 조카 M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M은 20년 동안 상환할 계획으로 1억 7,000만 원을 대출받아 25평짜리 아파트를 2억 5,000만 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M의 부동산 순자산은 얼마일까? 전체자산 - 대출금이니 2억 2,000만 - 1억 7,000만 = 5,000만 원이다. 아파트의 소유권은 M에게 있지만, 20년간 매달 원금을 제외하고 이자로만 수십만 원씩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M은 이따금 '이 아파트는 방 한 칸 정도만 내 것이야. 나머지는 은행 것이지' 하며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후, M의 아파트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 대치동 대치 OO 59㎡ 18억 7,000만원에 거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 OO 3층 전용면적 59㎡형이 18억 7,000만 원에 거래됐다.
- 《조선비즈》 2021.2.3
평균적인 물가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강남 아파트' 라는 희소성 때문에 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아파트를 매입했을 당시, 보유한 자산의 대부분이 부채였던 M은 이제 원금과 이자를 다 갚고도 15억 원이 넘는 이득을 얻은 셈이다. 아파트 자체는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20년이 흐르는 동안 상당히 낡고 허름해졌을텐데 말이다. M은 그저 이 자산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자신이 짊어진 부채의 부담감을 덜어낸 것이다. 실제 빚의 액수가 변하진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동안 빚의 크기가 자산 대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단지 유통되는 돈의 총량이 커지고 물가가 오른 것만으로 빚 부담이 가벼워진 것이다. 부동산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간 인건비, 원료비며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각종 비용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물가도 꾸준히 올랐다. 거대해진 경제 규모만큼 '대출' 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돈이 풀려나갔고, 그로 인해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자산의 거래액이 커진 것이다. 그렇지만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모든 자산의 가격이 똑같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강남 부동산의 경우, 많은 이들이 소유하기를 원하는데 실제 공급은 한정되어 있으니 가치가 그만큼 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은 오히려 반대다. 인구가 적어지는 만큼 아파트 수요도 줄어들면서 아파트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물가상승률을 상쇄해버릴 때가 있다. 20년 전에는 분명 비슷했던 사람들의 처지가 그동안 '어떤 자산' 을 소유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심지어 그 자산의 대부분이 부채였던 경우에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빚내서 집 사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을 섣불리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어떤 집이냐, 혹은 어떤 시점이냐에 따라 맞는 말이 될 수도, 틀린 말이 될 수도 있다. 요점은 '빚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그런 상식마저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 더해 인플레이션이 누적되는 사회에서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강남 부동산과 지방 부동산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지켜봐 온 한국 사회의 상황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고 양극화도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디플레이션 Deflation 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과 반대의 개념이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이상으로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현재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 전세로 살고 있는 회사원 N이 있다. 이제 전세살이를 끝내고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마련하고 싶었던 N은 자신이 원하는 매물의 가격이 지금보다 딱 1억 원만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자신도 친구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가능한 대출을 전부 받고, 전세금도 빼서 아파트를 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나라 경제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가정하면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면서 파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전부 얼어붙었다. 부동산 시장 역시 그 여파를 피해가지 못해 가계 부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 파산을 신청하면서 대출로 유지되던 아파트 매물이 시장에 마구 쏟아져 나왔다. N이 원하던 대로 5억 원에 머물던 아파트의 가격 역시 4억 원 아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막상 고대하던 그순간이 왔는데 N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없었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던 그즈음 N이 다니던 회사도 파산을 해버렸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잃은 N은 설상가상으로 지금 사는 빌라의 전세금마저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빌라 가격도 덩달아 폭락하는 바람에 집주인이 전세금 상환을 거부하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서울 지역 아파트에만 한정하면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금융위기가 발생한 시점 전후에만 가격이 떨어졌다. 아무 이유없이 물가가 내려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다음 기사에 적혀 있듯 경제위기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불린다.
연합뉴스 1998.5.15
"자산 디플레이션에 의한 복합불황 초기 징후"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지지속되면서 자산 가격 하락이 신용경색을 심화, 경기를 위축시키는 '복합불황' 의 초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금융기관의 대출금 상환 요구가 거세지고 전세입주자들이 주택 가격 하락 시 전세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하는 현상이 심해지면 투자의 소비의 위축을 초래, 경기침체가 심화되는 복합불황이 본격화될 수 있다" 고 전망했다. (···)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유발하는 위기가 단순히 아파트 가격 하락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산한 기업과 가계, 그리고 전반적으로 내려간 부도산 가격은 정부의 세금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써야할 돈은 많은데 세금이 적으면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해진다. 결국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면서 한국 정부가 발행한 화폐나 국채의 가치도 한없이 추락하게 된다.
이 상황을 해외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원화, 혹은 원화로 구입한 한국 주식 등 국내 자산을 계속 갖고 있으려고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모두 달러화로 되팔아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뭔가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기준금리를 급하게 인상하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일시적으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을 테고, 그럼 그 수요를 믿고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 있지만 올라간 금리의 영향으로 시중에 돈이 원할하게 돌지 못하니, 급전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대출이 많은 가계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디플레이션이 오면 경제 약자들부터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이다.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에 한국 사회가 직면했던 경제위기의 단면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면 디플레이션은 현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는 아예 연2%의 '안정적인물가상승률'을 정책 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 연 2% 정도로 물가가 '천천히 상승'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여기서 알아보았듯 디플레이션보다 차라리 약한 인플레이션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산 가치가 팽창하는 인플레이션, 그리고 성장이라는 목표하에 끊임없이 새로운 돈을 만들어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성장을 멈추는 것처럼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다가 금세 더뎌지기도 하다. 이렇게 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부채만 과하게 확장될 때 거품 경제 같은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거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 연쇄 파산과 장기 침체로 이어진다. 물론 이 과정을 극복한 후 살아남은 승자들이 다시 성장의 과실을 차지하는 재건과 회복의 과정이 뒤따른다. 이처럼 경제는 돌고 도는, 순환하는 세계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는 모두 바다를 항해하는 나룻배에 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룻배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커다란 선단을 이루고 있다. 세계화 이후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시민들의 경제활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돌아가고 있듯, 이 배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나룻배 하나가 드넓은 바다를 움직일 수는 없지만 여러 배의 움직임이 모이면 때로 거친 파도를 만들어낸다. 중동 지역의 분쟁으로 인해 기름값이 폭등하자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위협받고, 그리스의 금융위기가 유럽연합의 위기를 낳고 세계경제의 침체로 이어지는 일이 그 예다.
바다가 비교적 잔잔한 상황이라면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저 먼바다에서 불어닥친 커다란 파도 한 번만으로도 어제 당연하던 일상들이 거짓말처럼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것만으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평온할 때일수록 오히려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위태로운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남을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렇게 경제 현상과 원리를 공부하는 이유다.
04 에필로그 중산 씨의 안타까운 결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한번쯤은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한다. - 르네 데카르트
#IMF 외환위기 #부도 #파산 #국가주도 경제체제
1997년, 많은 사람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중산 씨의 꿈과 인생이 담겨 있던 중산 베이커리도 문을 닫는다. 거품이 꺼지고 나자 부채로 잔치를 벌였던 대기업, 무역적자에도 환율 정책을 손보지 않았던 정부의 불찰 등이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쓰러지는 기업들
당시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
① 엄청난 부채
② 정부와 결탁한 부정부패
③ 기업 경쟁력 약화
④ 문어발식 기업 확장
→ 정부가 살려줄 거라는 믿음으로 비효율적인 체제 지속.
1997년 IMF 관리 체제가 시작될 즈음, 중산 베이커리도 파산 신청.
거부가 된 돈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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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중고차 거래를 불황의 전조로 판단하고, 원화를 금과 달러화로 바꿈. 이후 달러화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해 거부가 됨.
챕터 이야기
04장에서는 길고 길었던 중산 씨의 이야기를 마지막 짓는다. 04장에서는 가장 어두운 내용이다. 1997년 겨울은 잔인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소중한 일터를 잃었다. 심지어 은행들까지 문을 닫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그때 경제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 겨울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중산 베이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채권을 발행하는데 성공을 했을까? 아니면 해외에 빵을 수출해서 돌파구를 찾았을까? 둘 다였으면 좋겠지만 안타깝지만 둘 다 실패했다. 당시 낮게 유지되던 환율이 수출에 매우 불리했기에 그 여파로 중산 베이커리도 쉽사리 수출 활로를 찾지 못했다. 중산 베이커리의 경영상태가 날로 악화되자 채권자들은 더 이상 만기일을 연장해주지 않고 대출금 회수에 돌입했다. 공격적인 대출로 일궈온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렸음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줄줄이 나쁜 일만 일어났고 중산 베이커리의 재정은 회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무너졌다. 사실 중산 베이커리가 잘나갈 때는 아무도 부채를 문제 삼지 않았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그 정도 빚은 필수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자 모두 부채가 문젯거리로 변했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중산 씨가 빚을 내 사업을 시작한 그 순간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장이 다 끝나버린 때까지 중산 씨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상황은 실제로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이 겪은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한국은 해외에 금융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덕분에 국내 기업들은 상당한 규모로 외국 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규제가 완화되고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급격히 만들어지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며 달려들던 시대였다. 빚을 지고 무엇인가를 구입하는 일, 빚으로 투자하고 확장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먼저 공격적으로 시장을 차지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처질 거라는 불안이 커져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감당하지도 못할 부채를 기꺼이 짊어졌다. '남의 돈' 으로 벌인 잔치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 부채가 굉장히 심각할 정도였다. 1996년에 30대 대기업의 평균 부채 비율은 약 450%였다. 기업의 총자산이 1조 원이라면, 실제로 회사가 가진 재산은 2,000억 원도 채 안 되고 나머지 8,000억 원 넘는 돈이 전부 빌린 '남의 돈' 이었다는 이야기다.
성장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 되면 돈을 더 벌 텐데, 다음 달에 돈이 들어오는데···' 모두 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경제 상황이 변하면 그때 가서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고, 아직은 안전하다고 중산 베이커리처럼 사업을 확장하면서 겁 없이 채권을 마구 발행한 것 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이건 급격한 경제 개발 과정의 부작용이기도 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군사 정권 아래에서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고수해왔다. 쉽게 말해서 민간 기업의 경제활동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하는 정책이다. 여기서 가상의 필자가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데 기업의 경쟁력이 왜 약해지는지 물었다. 그것의 답으로 순수하게 자력으로 얻어낸 경쟁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답과 비유를 또 들어주는데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인이었다고 성인이 되고 부모의 지원에서 막 벗어난 시점엔 몹시 힘들지만 직장에 들어가서 일정한 수입원을 만들어 독립을 한다면 머지않아 자신의 힘만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지원을 계속 받으며 살아가는 성인은 그 반대다. 지원이 지속되는 와중에 남부럽지 않게 살지 몰라도 영영 자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국가주도로 경제를 운영하다가 1990년대 들어와 세계화와 시장 개방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주변 나라들이 한국도 민간 기업 주도로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며 압박해왔고, 우리도 스스로 그 필요를 느꼈다. 국가 주도 발전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들이는 비용 대비 성장이 정체되는 시점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할 시간이다. 기업 스스로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을 만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과거 국가 주도 경제체제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일자리 문제가 워낙 중요하니까 경쟁력이 좀 떨어져도 큰 기업들은 결국 국가가 살려줄 것' 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것을 '대마불사의 신화' 라고 부른다. 대마불사란 '말들이 무리를 이룬 대마 大馬 는 위태로워 보여도 쉽게 죽지 않는다.' 는 뜻이다. 원래는 바둑 용어인데 아래 기사처럼 경제 영역에서도 종종 쓰인다.
국내 빅테크 금융 플랫폼, 대마불사 된다.
국내 빅테크 (거대 IT 기업)가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이른바 '대마불사' 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 대마불사는 규모가 큰 기업이 도산하면 다른 경제주체의 잇단 피해가 예상되므로 정부가 구제해야 한다는 경제 용어다.
-《매일노동뉴스》 2021.10.18
부실한 기업들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으니 비용은 크고 효율은 낮은 체제가 지속됐다. 수출을 둘러싼 환율 조건도 좋아지지 않아서 무역적자는 계속 심해졌다. 달러화가 부족하니 급한 대로 해외의 고금리 부채까지 써가며 사업을 확장하는 기업도 늘어났다.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기업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기업들이 한계에 부딪힌 본업을 혁신하는 대신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식 국가주도 경제체제로 인한 부작용이 한 참 뒤인 1990년대에 드러난 셈이다.
오늘로 치면 △ △기업 하면 그 아래에 △ △건설, △ △자동차, △ △생명 등으로 하는 것도 다 문어발식 확장의 결과다.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려가던 대기업들의 부도가 시작된 것은 1997년 초부터였다. 한보철강, 삼미그룹, 진로, 기아, 대우···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대기업이 부도를 냈다는 소식이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가계와 기업, 정부가 긴밀한 현대 경제에서 기업의 부도는 단순히 그 기업의 파산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는 물론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구매한 기관과 거래 기업, 자금을 대출해준 은행 모두가 피해를 본다는 뜻이다. 이렇게 도미노 처럼 하나가 쓰러지면 또 다른 하나가 무너지듯 부도 전날까지 장부에 수천억 원, 아니 수조 원의 자산으로 기록되던 채권과 주식이 하루아침에 0원으로 바뀌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자산이 날마다 거품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도 기업의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재정이 건전하던 애먼 은행과 기업마저 줄지어 위기를 맞이했다. 직장과 재산을 잃고 파산하는 가계도 빠르게 늘어났다. 채권, 주식, 예금이 마치 거짓말처럼 공중분해됐다. 중산 베이커리 역시 재정난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 중산 베이커리는 여러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던 1997년 9월의 어느 날 조용히 파산 신청을 했다. 한때 전도유망했던 기업의 결말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결말이지 않을 수 없다. 중산 씨 역시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월급도 반납하고 재산도 처분해가며 회사 재정에 보태려고 했다. 그마저도 연일 불어나는 부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기업이 파산하자 중산 씨가 가지고 있는 중산 베이커리 주식 2만 주는 당연히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가 국가 빚을 갚지 못해 국제통화기금인 IMF의 관리 체제에 들어가게 됐다는 뉴스가 전광판에 흘러나오던 어느 날, 모든 걸 잃고 지하도에 거처를 마련한 중산 씨는 수중에 남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수년간 중산 씨는 여러 번 기사화될 정도로 촉망받는 기업가 중 한 명이었으며, 수백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사회 환원도 게을리하지 않은 존경받는 경영자였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거품처럼 만 원짜리 한 장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중산 베이커리의 이야기는 허구지만 실제로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허다했다. 폐업과 실직이 너무나 흔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더 비극적인 것은 완전히 다른 운명을 선택한 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중산 씨가 착잡한 심정으로 회한에 잠겨 있는 사이, 검은색 고급 외제차 한 대가 앞을 지나갔다. 창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돈만 씨였다. 돈만씨가 중산 베이커리 주식 2만 주를 25억에 팔았다고 했었는데 돈만 씨는 계산이 빠르고 시류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던 돈만 씨는 그즈음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날로 커져만 가는 기업들의 부채, 그런데도 높게 유지되는 원화 기치, 기업들의 재정적자 심화와 구조조정···. 그러다 1996년 초, 중고차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그는 일생일대의 위기이자 기회가 왔다는 확신을 가졌다. 새 차가 아닌, 중고차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을 불황의 전조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연합뉴스 1996.4.17
중고차 거래 지난달 월간 최고 기록
중고차 시장이 연초부터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서울 자동차 매매 사업 조합에 따르면 올해들어 지난달 말까지 장안평 등 서울 지역 7개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된 중고차는 모두 2만 2,90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 8,020대보다 26.8% 늘었다. (···)
이 기사를 보고 단순화해서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지만 이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돈만 씨의 판단이 옳았다. 돈만 씨는 과거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떤 자산의 가치가 올랐는지를 조사하고 그 조사를 토대로 자신이 가진 자산 대부분을 금과 달러화로 바꿨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거라는 계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화와 금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실제로 1달러당 750원 선에 머무르던 달러화의 가치는 IMF 외환위기가 터진 뒤 폭등해 1달러당 2,000원 선까지 치솟았다.
모두가 치솟는 환율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을 때 혼자 재산을 3배로 불린 돈만 씨는 거꾸로 각종 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반토막 난 강남의 알짜 부동산, 부도 위기에 내몰려 10분의 1수준으로 폭락해버린 대기업들의 주식 등이 주된 쇼핑 품목이었다. 여기에는 지금 가격의 60분 1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년 뒤에 한국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다시 경제가 정상화되었을 때, 돈만 씨는 어느새 수백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거부가 되어 있었다. 만약 거꾸로 말해서 경제위기가 오지 않고 호황이 계속 유지됐다면, 그래서 원화 가치가 계속 강세였다면 혼자서 큰 손해를 보는 건 오히려 돈만씨였다. 돈만 씨는 그럴 가능성까지 각오하고 나름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물론 중산 씨를 비롯해 고통받았던 사람들 역시 잘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모두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과 돈만 씨의 차이가 있다면, 안타깝게도 '경제를 잘 몰랐다' 는 것 뿐이다. 중산씨는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히 일만 하면 된다고 믿는 성실한 농사꾼 같은 사람이었다. 중산 씨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런 믿음을 일종의 미덕처럼 여기고 경제를 터부시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노동을 대부분 하고 있고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산 씨는 어리숙한 농사꾼이라고 판단된다. 자신이 키우는 종자의 특성이 무엇인지, 농지는 충분히 비옥한지, 지금이 씨를 심어야 할 계절인지 아니면 종자를 비축해야 할 계절인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대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되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산 씨는 경제를 모른 채 열심히 일만 한 대가로 모든 재산을 잃었고, 자신이 힘겹게 일구어낸 기업과 구성원들의 삶도 지켜내지 못했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에게는 마음이 아픈 일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경제의 세계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느낄 때는 사회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보험제돤 사회 안전망, 재분배 정책 등은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개인의 삶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지탱해준다. 물론 개인 스스로 경제를 잘 알고 현명하게 판단해야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우리의 현대사만 놓고 보면 IMF 외환위기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지만 인류 역사 전체를 보면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시적인 침체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과정을 버티고 살아남아 재건된 세계 속에서 번영을 누린 이들도 매우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한 축인 경제의 본질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누구도 복잡하게 엉켜있는 경제 문제에 단 한 가지 정답을 가지지 않고, 내가 맞닥뜨린 문제의 정답을 다른 누가 대신 알려줄 수 없으니 그리고 다가올 앞날은 아무도 모르기에 결국 우리는 지나온 과거에서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구하게 된다. 경제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골치 아픈 분야가 아닌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존재해온 인간의 삶의 총체라고 말하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할 때 경제와 역사를 아는 것이 곧 인간을 아는 것이자 세상의 원리를 아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미지근한 경제가 제일 좋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은 어느 것이든 지나치면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경기가 너무 과열되면 물가가 치솟아 살림을 꾸려가는데 어려움이 발생한다. 반대로 경기가 너무 식으면 실업이 만연하고 자산 가치가 떨어져 고통스럽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기 상황을 가장 선호할까? 그 중간의 적절한 수준, 그러니까 경기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은 '미지근한' 수준이 좋겠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동화책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에 비유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골디락스가 숲에서 길을읧고 해매다가 오두막을 발견한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외출하고 빈집 식탁에 세 그릇의 수프가 놓여져있었다. 하나는 뜨거운 수프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식어서 차가운 스프였고 나머지 하나는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수프였다. 골디락스의 선택은 당연히 미지근한 수프였다.
데이비드 슈먼이라는 경제학자가 이 동화에 착안해 '골디락스 경제'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경제가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중간쯤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02장의 퀴즈를 풀어볼 수 있다.
https://nantalk.kr/bbs/board.php?bo_table=economics_quiz&wr_id=2
※ 난처한 출판사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경제 공부를 위해 자체적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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